문화
20조원대 용틀임하는 중국 미술 시장
입력 2018-11-13 11:17  | 수정 2018-11-18 10:49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에 전시된 무라카미 다카시 ‘구름 속의 용’을 관람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에 전시된 무라카미 다카시 ‘구름 속의 용을 관람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지난 8일 중국 상하이 황푸강 서쪽 미술 특구인 웨스트번드 홀N 안에서 거대한 푸른 용이 익살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로 18m, 세로 4m에 달하는 일본 팝 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 대작 '구름 속 용'이다. 이날 개막해 11일까지 열린 제5회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 특별전으로 용틀임하는 중국 미술 시장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불과 5년 만에 세계 43개 도시 유명 갤러리 110곳을 유치한 이 행사는 아시아 아트페어 1위 아트바젤홍콩을 넘어설 기세다. 미국 페이스·리만 머핀·데이비드 즈워너·가고시안, 영국 화이트 큐브, 스위스 하우저 앤 워스, 프랑스 페로탕 등 세계적 갤러리들이 소속 작가들의 대작을 내걸고 중국 미술관과 컬렉터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중국 미술 시장이 20조원대로 팽창하면서 화이트 큐브, 데이비드 즈워너, 페로탱 갤러리 등이 상하이 분점을 내며 대륙 공략 속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대표 미술관인 퐁피두센터도 내년에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분점을 연다.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 기간에 제12회 상하이 비엔날레(10일~내년 3월 10일 PSA), 아트페어 '아트021'(9일~11일 상하이전시센터)도 동시에 열려 미술 축제를 만들었다. 또한 롱 미술관의 루이즈 부르주아 개인전(3일~내년 2월 24일), K11아트 미술관의 카트리나 그로세 개인전(10일~내년 2월 24일), 유즈 미술관의 명품 브랜드 구찌 현대미술 전시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10월 11일~12월 16일), 락번드 미술관의 프란시스 알리스 개인전(9일~내년 2월 24일) 등 블록버스터 전시가 함께 열려 11월 상하이는 미술 도시로 변신했다.
이 기간에 프랑스 설치미술가 장 미쉘 오토니엘, 무라카미 타카시, 프란시스 알리스, 카트리나 그로세, 미국 사진 작가 신디 셔먼 등 세계 미술 거장들이 찾아왔다. 작품 가격이 100억원대에 달하는 무라카미는 상하이 후구 로드에 위치한 패로탕 갤러리 개인전(10일~내년 1월 5일)에 나타났다. 작품에 등장하는 알록달록한 꽃과 만화 캐릭터로 만든 옷과 모자, 신발을 착용한 그는 팬들에게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었다.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 메인 전시장이자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웨스트번드아트센터에선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작품들이 대거 걸려 장관을 이뤘다. 개인 소장용 작품을 주로 파는 다른 아트페어보다 갤러리 부스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았다.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영국 벤 브라운 파인 아츠 갤러리는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 5점을 내걸어 시선을 붙잡았다. 회색 바탕에 흰색으로 흐릿한 여인 형상을 그린 1968년작 '테이블의 두 여인', 붉은색·푸른색·노란색이 뒤섞인 1973년작 '레드-블루-옐로우' 등을 선보였다.
화이트 큐브는 나비 수천 마리를 박제한 데미안 허스트 설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고, 데이비드 즈워너는 중국 미술관 전시를 겨냥해 미국 조명 작가 댄 플레빈의 대형 형광등 작품 2점 만을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페이스 갤러리는 독일 작가 키키 스미스의 알루미늄 조각 '슈팅 스타' 등을 천정에 걸었고, 스테인드 글라스로 죽은 나무를 형상화한 '프렐류드' 등을 내세웠다. 리만 머핀 갤러리는 서도호의 집 현관을 본뜬 초록색 설치 작품, 이불의 흰 머리카락으로 만든 신작 등을 선보였다.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영국 리슨 갤러리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일본 오타 파인 아츠 갤러리는 자국 출신 세계적인 작가 구사마 야요이 회화 '인피니티-네츠(Infinity Nets)', 스테인리스 조각 '호박(L)'을 설치했다. 영국 리슨 갤러리는 남녀가 생기발랄하게 걸어가는 줄리안 오피 작품 'Faime and Shaida'로 부스를 장식했다.
국내 화랑으로는 국제갤러리와 아라리오, P21이 참여했다. 국제갤러리는 권영우,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 정상화 등 단색화 거장들 작품, 김용익의 땡땡이 회화 작업 '무제', 북한 자수공예가들과 협업한 함경아의 자수 회화 연작, 양혜규 신작 등을 내세웠다.
웨스트번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입지를 다진 아라리오는 박제 사슴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 신작, 인도 작가 날리니 말리니 작품 등을 선보였다. 웨스트번드 아리리오에서는 말리니 개인전을 동시에 열고 있다.
P21은 최정화의 화려한 대형 설치 작품 '과일나무'와 '플라워 샹들리에'로 화제가 됐다. 부스에는 물방울 작가 김창열, 비누 작가 신미경, 최선, 이병찬 작품을 내걸었다.
상하이 웨스트번드개발그룹 공사가 운영하는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외에 '아트021'도 빠른 속도로 안착한 민간 주도 아트페어다. 미술 관계자 카일리 잉, 바오 이펑, 데이비드 차우, 저우 잉 등이 2013년 공동 설립했다. 올해는 페이스와 하우저 앤 워스, 페로탕, 데이비드 즈워너 등 세계 정상급 화랑들이 참가했다. 국내에서는 아라리오와 부산 조현화랑이 부스를 차렸다.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관람객이 페르난도 산체스 카스틸로의 ‘그네(swing)를 타고 있다.
화력 발전소를 개조한 PSA에서 열리는 상하이 비엔날레 올해 주제는 'Proregress(禹步)'. 미국 시인 E. E 커밍스의 시에 나오는 단어로 진보(progress)와 퇴행(regress)의 응축을 뜻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대형 동상 목에 그네줄을 매단 작품이 주제를 잘 보여준다. 스페인 작가 페르난도 산체스 카스틸로 작품으로 관람객들은 그네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후퇴하면서 주제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기념비를 패러디해 승자의 역사를 비판해왔다.
이번 비엔날레 총감독은 멕시코 큐레이터인 쿠아 우테 모크 메디나로 중국 정부 검열을 피하면서도 수위 높은 작품을 응집력 있게 전시했다. 한국 작가로는 올해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발루아즈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한 강서경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후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하는 정은영이 참석했다.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만난 강서경 작가
강서경 작가는 1인 궁중무용인 춘앵무와 전통악보인 정간보를 재해석한 '검은자리 꾀꼬리'와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국 무용수 2명이 2㎡짜리 화문석 위에서 제한된 움직임을 보여줬다. 지난 9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춘앵무는 조그만 화문석 위 춤이고 나 역시 캔버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화가라는데서 영감을 받았다. 종이에 시공간을 만든 정간보처럼 나만의 기호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만난 정은영 작가
정은영 작가는 판소리 심청가와 서울 시내·전남 진도 팽목항 풍경을 담은 8폭 영상 작품 '8경'을 펼쳐놨다. 작가는 "심청이 죽으러 가는 대목에서 세월호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풍경에도 고통받는 인간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하이 =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