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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IT구루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입력 2018-11-06 17:05  | 수정 2018-11-06 21:17
"삼성전자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적 한계의 극한까지 다다르며 만들어놓은 진입장벽 덕분에 중국의 추격에도 반도체 산업은 현재 위기 상황이 아닙니다. 과거와 같은 반도체 치킨게임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정보기술(IT) 구루(Guru)'로 통하는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최근 한국 경제에 화두로 떠오른 '한국 반도체 위기론'에 대해 직설적인 반론을 날렸다. 삼성전자가 줄곧 유지하고 있는 '초격차' 전략이 당분간 유효하다는 시각이다.
최근 서울 양재동 스카이레이크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진 회장은 "언젠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겠지만 수년 내에는 어렵다"며 "한국 반도체는 투자와 이익의 선순환 구조가 유지되면서 진입장벽이 형성됐고, 신규 진입자가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진 회장은 지금 한국에 '제조업 르네상스'가 발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무분별한 서비스업이나 신산업 위주 경제 발전 편향 속에 그간 한국을 이끌어온 제조업이 홀대받는 것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도 잃어버렸다는 시각이다.
진 회장은 "지금 한국은 반도체만을 볼 게 아니라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배가시켜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신화'를 일궈냈고, 이후 노무현정부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글로벌 IT 한국' 위상을 드높인 주역이다. 2006년에는 사모투자펀드(PEF)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인수해 경영 효율화 작업으로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로 투자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20년 전 나타났던 '누가 먼저 죽냐'는 치킨게임이 재발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위기라고 할 수 없다.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는 도전조차 해볼 수 없고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컴퓨터, 휴대폰 등 수요가 방대한 중국이나 조금 하는 수준이다. 반도체 산업 투자는 투자 대비 수익률 관점에서 답이 이미 명확해졌다. 최신 반도체 플랜트를 짓는 데는 10조원이 필요하고 연간 감가상각비가 20%인 2조원이나 든다. 시작하자마자 연 매출이 10조원 이상 나오고 40%에 가까운 이익률을 보여야 재투자 여력이 생기는데 신규 진입자는 이런 수익 창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향후 과제는 무엇인가.
▷초격차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반도체 기술이 물리적·재료적으로 더 이상은 발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는 기술 한계에 부닥치지 않도록 끊임없는 혁신의 과제를 실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산업 전반 경쟁력은 어떻게 보나.
▷그게 진짜 걱정이다.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절실하다.
우버 같은 공유경제 육성은 취지는 좋지만 더 큰 그림에서 국가 경쟁력, 양질의 일자리 증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조선·자동차 같은 전통 제조업이 부활해야 후방 효과가 배가되면서 일자리가 생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아마존, 알리바바 등 신서비스산업 강화도 좋지만 이러한 산업들은 기본적으로 유통산업이다. 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커질수록 구멍가게가 다 사라지면서 일자리가 날아간다.
근본적인 일자리 창출은 제조업에 있다. 근본적으로 제조업이 없으면 서비스업도 먹고살 게 없어진다. 독일을 보라. 독일은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꾸준하게 제조업으로 성장하지 않는가. 경제 규모가 큰 미국이 연 3.5%나 성장하는데 우리가 3%도 안되는 성장을 기록하는 이유는 제조공장 등 현장에서 공동화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
▷제조업 르네상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화학업 공장에 가면 30년 전 투자한 선조들의 제조 플랜트가 후손을 먹여살리는 구조다. 인건비가 이렇게 오르는데도 글로벌 시장에서 버티는 것은 과거에 제대로 세워놓은 플랜트의 감가상각비가 적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업 비용 구조를 살펴보면 재료비 60%, 판매관리비 5%, 감가상각비 15% 등에 인건비 비중이 15%를 넘으면 5% 이익도 못 내는 식이다. 그럼에도 과거에 지어놓은 제조 플랜트는 감가상각비가 5%에 불과해 지금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다. 지금의 플랜트가 더 낡기 전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더 짓고 갈고닦을 수 있는 경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이중고'에 우리 기업들이 직면해 있다.
▷최저임금은 시간이 지나면 경제주체들이 적응할 정도는 된다고 본다. 다만 이를 감내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치명타다.
더 큰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한국의 경쟁력은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납기를 잘 맞추고 '빨리빨리' 문화로 불량을 밤을 새워서라도 고쳐낼 수 있다는 신뢰를 얻으며 성장해왔다. 또 일단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엔지니어들의 힘에 있다. 기업인들은 밥 먹고 잠자는 거 빼곤 일만 생각한다. 근로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대표가 형사처벌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주52시간제 도입은 무리라고 보는가.
▷한국 경제성장을 시기별로 보면 1960~1970년대에는 근로자들이 부지런히 장시간 하도급 받은 생산직 일을 하면서 일궈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반도체 같은 것은 엔지니어의 승리다. 우리 스스로 개발한 게 통하면서 현재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것이다. 시급제 단순노동의 주52시간은 괜찮지만 기술직·연구직은 구분해야 한다. 일을 집중적으로 할 때가 있는데 시간으로 끊는 건 어려워 보인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일본에 가보면 공장장이 하는 일은 화재 예방이다. 화재 예방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불 조심하세요"라고 하면서 계속 돌아다니면 직원들이 알아서 조심한다. 정부가 제조업을 위해 해야 할 역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업이 중요합니다"라고 얘기만 해줘도 기업의 '기'가 살아서 잘한다. 오히려 정부가 너무 부지런해도 문제다. 가급적 기업에 대해 간섭을 하지 말고 근로시간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 같은 것을 지양해야 한다. 기업은 매우 단순하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으면 그 기업은 순식간에 확 죽는다.
■ "국민 돈 불릴 수 있다면…국수주의자라 불려도 좋아"
진대제 회장이 이끄는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는 2006년 백두산 천지를 영어로 번역해 지은 이름이다. 스카이레이크는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업계에서 천지만큼 높고 깊은 투자 이력을 줄곧 남기고 있다.
올해 들어 디스플레이 부품 업체 넥스플렉스(옛 SK이노베이션 FCCL사업부)와 자동차 부품 업체 KDA를 인수했다. 두 회사 모두 수출경쟁력이 높다는 점도 스카이레이크가 선택한 기준이 됐다.
앞서 스카이레이크는 테이팩스, 카페24 등에 투자한 뒤 기업 매각·지분 매각 등으로 높은 수익을 낸 바 있다. 공업용 테이프 제조업체인 테이팩스는 2013년 사모펀드로부터 약 1100억원에 사들인 뒤 2016년 1400억원대에 매각한 바 있다.
―PEF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기업과 정부에 있으면서 10년치 중소기업 정책을 리뷰해봤다. 지원 정책이 계속 추진됐지만 대출 중심의 지원책이 비슷비슷할 뿐이라서 제대로 된 금융 서비스와 경영 컨설팅이 한국 중소기업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업에 금융이라는 혈액을 잘 순환시키고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통해 기업도 키우고 고용도 늘리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모펀드가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가.
▷매출을 2배 늘린다고 고용이 2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소기업을 매입해 국내 대기업인 한솔과 한화 등에 재매각할 때 기존보다 20~30% 이상씩 더 많은 인원을 충원했다. 경영효율성 강화로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고용이 늘어나는 구조다.
―국내 기업에만 투자하는가.
▷국내 연기금의 돈을 펀딩 받아 국내 기업을 키우고 되팔아 차익을 낸 뒤 국민연금에 이익을 돌려주는 구조다. 나를 '국수주의자'라 해도 좋다. 국민의 돈으로 국내 기업을 성장시키고 국민의 돈을 더 불려준다는 철저한 철학이 있다.
―스카이레이크의 결정적 차이, 능력은.
▷창업자로부터 기업을 사오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유지됐던 경영진이 달라지면 비전이 달라진다. 이때 역량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면서 효율성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 사이클에 맞춰 전문경영인을 바꿔가며 기업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이다.
―넥스플렉스, KDA 같은 기업의 투자 포인트는 무엇인가.
▷넥스플렉스는 신성장 사업으로 분류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휘어지는 화면)의 핵심 부품사다. 앞으로의 디스플레이는 접었다가 펴거나 휘어지는 등 다양한 변형 기술이 반영되면서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고 수출경쟁력도 뛰어나다. 자동차 부품사인 KDA는 4륜구동 엔진의 핵심 부품인 프로펠러 샤프트(엔진 구동력을 뒷바퀴에 전달하는 장치)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제품 대부분을 볼보, GM 등 해외 완성차 업체에 수출하는 경쟁력 있는 업체로 자동차 시장의 우려 속에서도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진대제 회장은…
△1952년 경남 의령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석사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전기공학 석사·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1981년 휴렛패커드 IC LAB 연구원 △1983년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1985년 삼성전자 미국법인 수석연구원 △1999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2003~2006년 정보통신부 장관 △2006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2006년~ 카이스트 초빙교수 △2018년 제1대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
[대담 = 임상균 증권부장 / 한우람 기자 / 진영태 기자 / 정리 = 사진 = 이충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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