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학생판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89주년…첫 국가 주관
입력 2018-11-04 06:00  | 수정 2018-11-04 10:22
【 앵커멘트 】
11월 3일 어제는 학생의 날로 알려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3·1운동에 버금가는 만세 운동이었는데, 올해 처음 정부 행사로 격상됐습니다.
정치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1929년 일제강점기 당시 통학 열차 안에서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던 일본 학생에 격분해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서울을 넘어 평양까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 만세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습니다.

▶ 인터뷰 : 문대식 / 광복회 광주·전남유족회장
- "신사 참배를 시키니까 학생들이 '안 된다' 해서 시내에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한 거죠. 그것은 1919년 3·1운동 다음으로 가장 큰 독립운동입니다."

그동안 교육청 주관으로 홀대 논란을 빚다가 올해 처음으로 정부 행사로 격상됐습니다.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학생 독립운동 당시를 재연하기 위해 배우들이 교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고, 후배 학생들이 당시 격문을 외쳤습니다.

당시 5만 4천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170여 명이 옥살이까지 했지만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212명에 불과합니다.

▶ 인터뷰 : 부정자 /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 부기준 씨 딸
- "(아버지) 손이 이뻤는데 고문으로 손톱을 다 펜치로 돌려버리고 코에 주전자 물을 부어서 고문 당하고 너무 고문이 심해서 오래 못 살고 돌아가셨어요."

▶ 스탠딩 : 정치훈 / 기자
-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독립유공자가 많은 만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MBN뉴스 정치훈입니다."

[ pressjeong@mbn.co.kr ]

영상취재 : 최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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