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이스피싱 영화 만들려 취재하다 범죄 가담…"돈이 되겠다 싶어 그랬다"
입력 2018-11-01 14:06  | 수정 2018-11-08 15:05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려고 중국 조직원들을 취재하다 범죄에 가담한 영화제작자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가시 및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국내 총책인 44살 영화사 대표 강 모 씨 등 4명을 구속하고 33살 박 모 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오늘(1일) 밝혔습니다.

또 이들에게 유령법인 명의를 제공한 57살 채 모 씨 등 12명을 공정증서원본 등 부실기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강 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유령법인·사업자 33개를 개설, 대포폰 860여개를 개통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공급하고 10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강 씨는 국내 개봉해 40만 관객을 모으기도 한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대표로, 2012년부터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중국 보이스피싱 7개 조직의 조직원들을 만나 취재해왔습니다.

시나리오는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가 조직을 역추적해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강 씨는 2016년 한 조직원으로부터 "콜센터에서 사용할 전화기를 개통해 중국으로 보내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자 영화제작 자금을 모으기 위해 범행을 시작했습니다.

강 씨는 경찰조사에서 "시나리오 취재를 하다보니 이게 돈이 되겠다 싶어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고 진술했습니다.

영화사 직원 이 모 씨, 유사 범죄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박 씨를 영입한 강씨는 '070' 인터넷 전화를 개통해 "대출해주겠다"며 유령법인 명의자를 모집한 뒤 법인을 설립해 전화기를 개통했습니다.

대출을 받을 줄 알고 개인정보를 넘겨준 채 씨 등 12명은 정작 대출은 받지 못하고, 형사처벌은 물론 배상책임까지 질 처지에 놓였습니다.

강씨 등은 국내에서 '070'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보다 '1577'나 '1566'로 시작하는 이른바 8자리 전화, '전국대표번호'가 좀 더 신뢰성 있다는 판단에서 발신 번호 변경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070'번호 5개로 발신할 때 수신자에게는 8자리 대표번호 1개가 찍히도록 세트로 묶어 중국 조직에 공급하고, 세트당 300만원씩 총 10억여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화 단말기를 중국 조직에 전달할 때는 인천항과 평택항에서 중국을 오가는 소무역상들을 이용했습니다.

강 씨 일당은 경찰 추적을 피하려고 2∼3주 주기로 대포폰을 바꿔 사용했고, 전화기를 소무역상들에게 보낼 때는 퀵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퀵서비스 또한 제3의 지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최초 발송지를 숨기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이들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달한 전화번호로 국내에서 135명이 10억원 상당의 사기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경찰은 올해 초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 중 특정 번호가 유령법인 명의로 개설된 사실에 착안, 범행의 패턴을 발견해 강씨 일당을 일망타진했습니다.

경찰은 유령법인 개설과 전화기 개통 과정에 제도적인 허점이 있어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관련 기관에 제도개선 사항을 전달할 방침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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