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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열전] ④ K뷰티 왕좌를 가려라…LG생활건강 vs 아모레퍼시픽
입력 2018-10-25 15:33 

최근 몇 년 간 가장 격동의 시간을 경험한 곳이 화장품 산업이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화장품업체들은 국내외 소비자를 매료시키며 프랑스, 미국, 일본 등 화장품 명가(名家)로 꼽히는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다. K뷰티 성공신화를 만든 일등 공신은 단연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다.
매 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성장세를 이어가던 양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중국발 경제 보복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자연주의 콘셉트를 내세운 로드숍 이니스프리와 한방화장품 설화수로 선두를 지켰던 아모레퍼시픽은 사드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반면 화장품과 함께 생활용품, 음료 부문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운영하던 LG생활건강은 3년 만에 1위 자리를 탈환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비슷한 듯 다른 전략을 내세우며 제2막을 준비 중이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와 사업다각화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LG생활건강과 포스트 차이나를 외치며 화장품으로 정면 돌파하려는 아모레퍼시픽. 다음 승자는 누가 될까.
◆ 사드에 엇갈린 명암…관건은 '럭셔리 화장품'
현재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17조1643억원으로 아모레퍼시픽(아모레G 포함, 16조8717억원)을 근소하게 앞서면서 화장품 대장주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 G가 화장품 전체 업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연초 49%에서 38%까지 줄어드는 동안 LG생활건강의 시총 기여도는 31%에서 36% 올랐다. 주가수익률 부문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이 40% 이상 빠졌으나 LG생활건강은 9% 소폭 하락하며 어려운 업황에서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해 LG생활건강은 매출액은 6조2705억원, 영업이익은 9303억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2.9%, 5.6% 증가해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3년 만에 K뷰티 왕좌를 되찾았다. 사드위기 속에서도 후, 수려한 등 고가 라인 화장품이 중국에서 선방하면서 매출을 견인한 결과다.
LG생활건강이 견고한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아모레퍼시픽은 사드 직격탄을 그대로 맞았다.
로드숍 이니스프리와 고급 화장품 라인 설화수의 활약에 힘입어 2014년부터 업계 1위를 지켜왔으나 지난해 매출은 6조291억원, 영업이익은 7315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10%, 32.4% 감소하면서 실적 위기를 맞았다. 중국 시장 호황기였던 2016년에는 LG생활건강과 매출 격차를 6000억원 이상 벌리며 승승장구 했던 아모레퍼시픽이었다.

두 회사의 성패를 나눈 것은 럭셔리 화장품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와 LG생활건강의 후가 그 주인공이다.
럭셔리 화장품의 원조는 설화수다. 1966년 'ABC 인삼 크림'이 모태인 설화수는 1997년 동양의 미(美)를 콘셉트로 새 옷을 입었다. 한방 인삼 화장품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내에서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연 매출 1조원 신화를 쓴 것도 설화수다. 2000년10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15년 만에 10배 이상 껑충 뛰면서 2015년에는 1조원을 돌파했다.
설화수의 선전에 뒤늦게 럭셔리 화장품 개발에 눈을 돌린 LG생활건강은 2003년 '왕과 왕후의 궁중스토리'를 담은 궁중한방 화장품 후를 론칭했다. 후발주자로 나선 후는 설화수보다 높은 가격대로 고급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당시 중화권에서 인기가 높았던 배우 이영애를 전속모델로 기용하면서 설화수를 맹추격했다.
2009년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설화수가 1조원을 돌파했던 2015년에는 8000억원 매출을 이뤄내며 무섭게 성장했다. 결국 2016년에는 매출 1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설화수와 함께 '1조클럽'에 가입했다. 이후 설화수가 1조원 매출권에 갇혀있는 사이 후는 올해 매출 2조원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어 '형보다 나은 아우'를 증명할 것으로 보인다.
설화수와 후의 승자 싸움이 곧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운명과 연결된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1,2분기에 이어 이번 3분기 역시 LG생활건강의 완판승이 이어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이 1조73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6% 증가해 분기 최대 실적을 또다시 갈아치웠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8% 늘어난 277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05년 3분기 이후 52분기, 영업이익은 2005년 1분기 이후 54분기 연속 증가했다. 이번에도 후를 비롯한 럭셔리 화장품이 매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LG생활건강이 함박웃음을 짓는 동안 아모레퍼시픽은 올 3분기에 매출액 1조2992억원, 영업이익은 1228억원으로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3분기 기저효과에 따라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추정되나 성장 회복기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신애 KB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시가총액이 11조6000억원까지 줄어들면서 2014년 8월 시가총액 수준으로 하락했다"면서 "면세점과 내수 채널들의 부진에다 중국 현지 성장성에 대한 우려까지 가중되면서 주가 지지선이었던 25만원 선 이하로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의 주가 하락은 중국 법인 성장률 저하의 영향이 크다"면서 "중국 매출의존도가 높음에도 이번 현지 법인 성장률은 5%대에 그칠 전망이고 현지 매출 80%를 담당하는 이니스프리와 라네즈, 마몽드 등 중저가 라인이 모두 역신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차석용 매직'과 '서경배의 뚝심'… 어떤 것이 통할까
K뷰티를 진두지휘하는 두 회사의 수장 스타일은 '하늘과 땅 차이다'
M&A를 적극 추진하며 사업 다각화를 추구하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팔방미인'이라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화장품만으로 승부를 보는 '한 우물파'에 가깝다.
차 부회장은 2007년 코카콜라음료 지분 90%를 사들이면서 음료사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 ▲ 2010년 더페이스샵 ▲ 2011년 해태음료 ▲ 2012년 바이올렛드림(구 보브)과 일본 화장품업체 긴자스테파니 ▲ 2013년 일본 건강기능식품 통신판매업체 에버라이프와 캐나다 바디용품업체 플루츠앤패션 ▲ 2014년 차앤박 화장품(CNP코스메틱스) ▲ 2015년 국내 색조화장품 전문업체인 제니스 ▲ 2016년 존슨앤존스 오랄케어 리치(REACH) 브랜드의 아시아·오세아니아 사업권 ▲ 2017년 태극제약 ▲2018년 일본 화장품회사 에이본재팬 등 18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차 부회장은 올 초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새로운 것, 기존에 없는 제품과 기술을 가진 좋은 기업이 있다면 언제라도 고려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인수합병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른바 '차석용 매직'은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중국 사드보복과 내수 경기 침체로 화장품업계가 휘청일 때 화장품·생활용품·음료로 일컫는 3각 사업 편대로 위험을 분산시킨 것이다.
하지만 서 회장의 경우는 화장품 사업에만 집중하는 '뚝심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서 회장이 아모레퍼시픽그룹(당시 태평양) 사장에 취임한 1997년 회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맞았다. 서 회장은 기업 모태인 화장품만 남기고 건설과 증권, 패션을 비롯해 프로야구단과 프로농구단 등 비(非) 화장품 사업부문을 모두 청산했다. 이후에도 사업 다각화 보다는 화장품 부문 확장에 주력했다. 2011년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 인수 이후 이렇다 할 M&A 소식이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서 회장이 '혁신상품 개발'과 '고객경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것도 화장품 집중 경영의 일환이다. 설화수를 비롯해 글로벌 히트작인 '에어쿠션', '투톤 립바' 등과 같이 기존에 없는 제품으로 소비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소신이 묻어나 있다.
또한 중국 리스크를 경험한 이후 포스트차이나를 찾아나서며 시장 다변화를 추구 중이다.
서 회장은 30개국 해외 신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홍콩·대만·일본·호주·캐나다 등 17개국과 함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규 시장을 확보해 잠재 소비자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올해 마몽드와 라네즈,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가 연이어 미국·호주·일본·중동에 진출했다.
박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더이상 K뷰티를 대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며 "K뷰티의 가장 큰 경쟁력인 혁신성 측면에서 회사는 에어쿠션 이후 이렇다 할 신규 카테고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M&A에는 인색해 브랜드 한계점이 드러난다"고 쓴소리를 냈다.
K뷰티는 지난해 최악의 상황을 지나 회복세에 접어 들고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전영현 SK증권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의 경우 면세점과 중국 현지에서의 럭셔리 화장품 판매 호조로 내년에도 견고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며 "아모레퍼시픽은 신흥국 시장에서 진출해 선제적인 생산과 유통 채널 기반 마련에 집중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 회복을 기대할 만 하다"고 전망했다.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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