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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벤처` 경영권 걱정없이 클수 있게…與, 차등의결권 추진
입력 2018-10-11 17:50  | 수정 2018-10-11 21:47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가운데)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회의에서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차등의결권 도입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창업 벤처기업에 대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한다. 문재인정부가 혁신 성장을 강조하는 가운데 창업 벤처기업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자금 유치를 원활하게 해 혁신기업 탄생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회의에서 "차등의결권이 도입되면 벤처 창업자가 자금 유치를 위해 기업공개(IPO)를 할 때 경영권이 불안정해지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 의장은 지난 7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차등의결권 도입 검토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차등의결권이란 주식 1주당 2개 이상 의결권을 갖는 것을 뜻한다. 현행 상법에는 '1주 1의결권' 원칙이 명기돼 있다.
경기도 성남 판교에서 모바일 게임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한 벤처기업가는 11일 정치권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벤처기업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며 소회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국내 벤처 환경에서는 외부에서 투자를 받은 이후 경영권이 흔들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제라도 기업들이 공정한 룰에서 성장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사업가의 바람이 곧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의 혁신 성장 주도 정책에 따라 여당인 민주당이 창업 벤처기업에 대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고 나섰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업계 고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며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면 혁신 벤처기업이 안정적인 자금 동원을 통해 성장하고 결국 양질의 일자리 창출까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등의결권은 벤처기업에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을 최소화하고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제도"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회사들도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에 미국은 물론 캐나다 영국 핀란드 스웨덴 등 주요 국가들도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고 있다. 김 의장은 "최근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홍콩은 올해 세계 기업공개 시장에서 미국 뉴욕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서울대 SK경영관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서울대 기업사회적정당성연구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한 '혁신 성장과 기업지배구조토론회' 당시 정·재계를 막론하고 관련 전문가들이 앞다퉈 강조한 점 역시 경직된 상법에서 벗어나 기업에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를 위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의 혁신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당시 강연을 통해 "혁신 성장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과 지속적인 혁신, 장기적 관점의 경영, 사회적 책임 경영을 촉진하는 제도적 여건을 구축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차등의결권 주식 제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이 최근 차등의결권 관련 법률안을 발의한 배경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최 의원은 "창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혁신 성장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번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창업을 한 뒤 IPO 등 외부 자금 유치가 이뤄지더라도 경영권이 보장되면 창업가의 기업가 정신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현재 많은 벤처기업가가 경영권 보호 장치가 없는 현실로 인해 중견기업·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포기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지는 유혹에 직면한다.

한편 차등의결권 적용 대상이 상장사로 확대돼야 한다는 업계 의견에 대해 정치권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최 의원은 "상장사는 기존 주주 권리를 침해할 이유가 있고, 홍콩 등 최근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곳도 이미 상장된 곳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 역시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벤처기업이 상장 이후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프랑스식 차등의결권(테뉴어보팅) 제도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국내 주식투자자 상당수가 단기 투자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 보유 주주와 대주주 등 '진성 주주'에 대한 의결권 우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프랑스에서는 주식 보유 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달리 부여하고 있다.
[김효성 기자 / 고민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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