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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바다 위서 重油생산…SK이노 3조이익 이끈다
입력 2018-09-30 17:25  | 수정 2018-09-30 23:30
지난 20일 오후 2시(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인근 해상에서 SK이노베이션이 임차한 주빌리스타호(왼쪽)가 해상 블렌딩을 위한 중유를 다른 유조선에서 수급받고 있다. [박재영 기자]
9월 20일 오후 2시(현지시간)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인근 해상에서는 FSO(해양에 떠 있는 원유 저장·하역) 선박 주빌리스타호의 해상 블렌딩을 위한 중유 수급 작업이 한창이었다. 블렌딩이란 유황 함유 비율이 각기 다른 중유를 섞어 저유황(통상 1% 이하) 등 필요 유황 함유량을 맞춘 중유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세로 길이만 330m, 축구장 3개 크기(VLCC급)인 거대한 저장선은 약 1시간 동안 3000㎥ 분량의 중유를 수급받는다. 8년 전 해상 저유황유 블렌딩 사업에 나선 SK이노베이션이 2020년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보호 규제로 주목받고 있다.
IMO는 2016년 환경 보호를 위해 해상 연료유에 적용되는 황산화물 함량을 3.5%에서 0.5%로 대폭 감축시키는 안을 확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저유황 제품 수요가 치솟게 됐고, 핵심 업체 중 하나인 SK이노베이션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규제를 사업 모델로 활용한 SK이노베이션의 선구안 덕분에 실적과 주가 역시 반등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해상 블렌딩을 통해 연간 100만t 수준의 저유황중유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석유사업에 포함되는 저유황유 시장 확대와 기존 파라자일렌 등 화학사업 호조로 이 회사 영업이익이 2016년 이후 2020년까지 5년 연속 3조원 이상을 꾸준히 유지할 것으로 본다.

이 회사는 저유황중유 시장 성장성이 불확실했던 2010년 해상 블렌딩 사업에 나서 해상에서 직접 저유황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경유 등에 비해 무겁고 점도가 높은 중유는 원산지가 상이한 유분들을 섞었을 때 예기치 못한 불순물이 발생해 선박 엔진에 고장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해운사들은 새로운 블렌딩 제품이 출시돼도 기존 제품을 계속 사용하거나 철저한 검사를 거친 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특정 중유들을 어떤 비율로 섞어야 문제없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만큼은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며 "배합 비율을 알아도 해당 원료를 조달할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하기가 신규 진입자에겐 쉽지 않아 선점 효과가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 해운의 거점인 싱가포르·말레이시아 해상에서 이뤄지는 블렌딩은 육상 작업에 비해 물류비 절감·시간 단축이라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해상 작업의 특성상 기존 유조선박에 블렌딩 설비와 중유가 굳는 것을 방지해줄 가열시설 등 추가 설치가 필요하다. 설치 후에도 안정성을 위해 평형수 관리와 24시간 교대 근무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어려움 탓에 일각에선 SK가 해상 블렌딩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SK이노베이션은 해상 작업에 대한 과감한 결단과 투자, 기술 고도화를 통해 결국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완근 SK 트레이딩 인터내셔널 팀장은 "여전히 전체 중유 중 70%가 황 함량 3.5% 이상인 고유황유"라며 "향후 규제로 인해 국제적인 저유황유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블렌딩유는 혼합 비율과 혼합 원료 거래처 확보가 중요하다"며 "후발 주자들이 이제 와서 수조 원 설비투자를 통해 저유황 해상유 시장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세계 최대 해운기업 머스크의 싱가포르지사장은 "시행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황 함량 규제는 해운업계에 전례 없는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저유황중유 자체가 새로운 제품이라 선사로서는 원료와 배합 비율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기존에 거래해 오던 제품들이 호환성·안정성·신뢰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연간 200만t에 이르는 저유황유 생산량을 2020년 400만t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 전사 차원에서 해상유 환경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친환경 제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설비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총 1조원가량이 투입되는 감압잔사탈황설비(VRDS)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고유황 연료유인 감압 잔사유를 저유황, 디젤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설비다. 2020년 설비가 완공되면 SK이노베이션은 국내 1위 저유황유 공급자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선 VRDS와 싱가포르 해상 설비 덕분에 2020년부터 SK이노베이션 연간 영업이익이 2400억원가량 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와 화학사업의 동반 상승 효과로 이 업체 영업이익은 연간 3조원대를 꾸준히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대감에 이 업체 주가는 지난 28일 장중 한때 21만95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최근 3개월 주가 상승률은 17%에 달한다.
[싱가포르 = 박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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