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허밍어반스테레오 "제 노래 듣는 게 좋은 취향 증표 되길"
입력 2018-09-20 17:10  | 수정 2018-09-20 20:28
2000년대 중반 싸이월드 시절 미니홈피 BGM(백그라운드 음악)계 절대 강자가 두 팀 있었다. 하나는 일본 가수 프리템포(Freetempo), 다른 하나는 한국 원 맨 밴드 '허밍어반스테레오(Humming Urban Stereo·HUS)'다. 아직 전자음악이 한국인에게 익숙지 않던 시절 두 팀의 노래는 홈피 주인의 '앞서 나가는' 취향을 드러내보이는 좋은 증표였다. 하지만 지난 19일 서울시 중구 매경 본사에서 만난 '허밍어반스테레오' 이지린(37)은 정작 대중의 생각만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고 했다. "저희가 벌었던 건 도토리(싸이월드 결제 수단)였거든요."
그가 5집 '브이(V)'로 돌아왔다. 정규 앨범을 낸 건 6년 만이다.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CM송(광고방송용 노래)으로 접해봤을 '하와이안 커플' '샐러드 기념일'과 비교했을 때 훨씬 진지하고 차분한 사운드로 들어차 있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귀여워 귀여워/웃을 때 귀여워'('하와이안 커플' 中)라고 서로에게 속삭이던 연인은 '좋아해라고 말한 뒤/넌 안아 줄 사람에게 갔어'('좋아해' 中)라며 권태와 피로를 드러내게 됐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요. 30대가 되면서 20대에 흔히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게 되잖아요. 좀 더 침착해진 것 같아요."
실제 그의 성격은 요즘 부르는 노래처럼 진중했다. 질문을 받으면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가며 저음으로 대답했다. 좀 '놀았던' 사람이 많은 가요계 분위기와 달리 이지린은 한때 따돌림을 당했을 정도로 학창 시절이 괴로웠다고 한다. "제가 음악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집에 오래 있다 보니깐 그런 거였죠."
그런 이지린은 20대 초 미디(MIDI·컴퓨터를 이용해 작곡을 가능케 하는 프로그램)를 접하며 음악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자작 노래를 스스로 CD에 담아 음반매장 '향뮤직'에 판 게 대박이 나 신해철 '고스트네이션' 인디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후 허밍걸, 요조, 최강희 등 여성 객원 보컬을 앞세운 러브송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당시 만들었던 노래 중 국내 광고에 삽입된 것만 열 곡 가량 된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단지 노래가 좋아서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목소리, 성격 같을 걸 넘어 등 뒤에 있는 점, 발목에 있는 핏줄까지 좋아질 수 있는 거잖아요. 우연히 노래가 사랑을 받아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돈 때문에 음악을 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신보엔 90년대 R&B(리듬앤블루스) 스타일 'YTT', 부루마블에서 영감을 얻은 '게임 오버(Game Over)' 등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낼 수 있는 15곡을 채웠다. 객원 보컬 대신 본인의 목소리를 더 부각했다. 음악적 변화가 6년 전 4집부터 시작됐다고 한 그는 수익적인 면에서 봤을 땐 1~3집이 몇 배 나았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 색채를 되돌릴 생각은 없다고. "돈의 무게는 전작들이 좋았겠죠. 그런데 삶의 무게는 지금이 훨씬 좋아요. 제 가장 큰 목표는 허밍어반스테레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 사람 음악 취향 괜찮네'라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거예요."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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