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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株, R&D비용 자산 처리땐 `깨알 주석` 달아야
입력 2018-09-19 17:59  | 수정 2018-09-19 21:43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3분기부터는 재무제표를 볼 때 실적보다 주석을 더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19일 내놓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관련 감독 지침'에 따르면 약품 유형별로 각 개발 단계 특성을 주석에 깨알같이 명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회계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서는 환영하면서도, 임상3상 이상 자산화 가능 등 일부 조항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의 합리적인 해석 범위 내에서 구체적 지침을 마련했다"며 "자본시장에서 투자자 관심이 높은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조치"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번 지침에 약품 유형을 신약, 바이오시밀러, 제네릭, 진단시약 등 네 가지로 구분하고 각각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세부 지침 등을 제시했다. 회사가 연구개발(R&D)에 쓴 돈을 자산으로 처리하면 개발 단계별로 재무제표에 주석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신약은 임상3상 개시 승인 이후부터, 바이오시밀러는 임상1상 개시 승인 이후부터 자산으로 표시가 가능하다. 제네릭은 생동성 시험(오리지널 약품과 생체 이용률이 통계적으로 동등한지 검증) 계획 승인 이후부터, 진단시약은 제품 검증 단계부터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약은 장기간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약에 대한 안전성과 약효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산가치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다"며 "반면 바이오시밀러는 미국 연구 결과 임상1상 개시 승인 이후 최종 승인률이 약 6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신라젠은 이번 지침에 따라 영업손실 규모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 항암 치료제 '펙사벡'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 중인 신라젠은 그동안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했다.
올 상반기에만 연구개발비 170억원이 들었다. 올 상반기 영업손실이 301억원 발생했는데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면 영업손실이 130억원대로 줄어들 수 있다. 이때 신라젠은 주석으로 해당 연구개발비를 펙사벡 글로벌 임상3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구개발 목표 시점 등을 공시해야 한다. 신라젠 측은 "새 회계 원칙이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주주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기존 보수적 관점을 유지할지, 변화를 줄지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바이오시밀러는 임상1상 개시 승인 단계부터 자산화할 수 있다. 임상1상 승인을 신청한 시점부터 개발 성공 여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해당 기업은 바이오시밀러 개발 프로젝트 내용을 주석에 명시해야 한다.
이날 지침 발표로 셀트리온은 회계 불확실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는 전 임상 단계부터 연구개발비를 자산에 포함했다. 순수 신약만 비용처리를 해왔다.
이날 금융당국이 전 임상 연구개발비는 자산화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전체 개발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안팎이라 셀트리온 회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시밀러 위주 사업구조를 가진 셀트리온은 올 상반기 연구개발비 1307억원 중 73.8%가 자산으로 분류됐다. 금융당국의 이번 감독지침 발표에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지난 1년여 동안 시장에 가장 큰 불확실성이었던 '테마감리' 이슈가 종결된 데다 수십 년간 회사별 기준에 따라 임의로 분류해 오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약 임상3상부터' 등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제약·바이오 업계 현실을 모르고 만든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높다.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국내 대부분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임상 전 후보물질 단계나 임상1·2상에서 적게는 수백억 원, 많게는 수천억 원을 받고 기술이전을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자산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신약으로 임상3상을 진행 중인 회사는 바이로메드와 신라젠 정도로 손에 꼽히며 최근 2~3년 새 쏟아진 대부분 굵직한 기술 수출은 임상3상 이전 단계였다.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기업 공개를 앞둔 일부 회사와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그간 정부 방침에 따라 회계처리를 수정해 온 상장사와 보수적 회계처리를 해 온 제약사들은 리스크를 거의 털어냈다. 그러나 비용 처리와 자산 인정심사가 깐깐해지면서 비상장사와 스타트업은 고려할 변수가 훨씬 많아졌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일부 조항은 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협회에서 제약·바이오 업계 의견을 모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 / 조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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