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9월 14일 뉴스초점-차 판매왕이라더니…
입력 2018-09-14 20:07  | 수정 2018-09-14 20:54
집 근처 자동차 판매점에서 차를 계약하고 결제를 했는데, 약속한 날짜에 차는 오지 않았고, 해당 영업사원은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업무가 수월하지 않아 연락되지 않았겠지 했지만 며칠 뒤 판매점으로부터 돌아온 말은 그 영업사원이 출근하지 않는다는 거였고, 그제야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경찰에 따르면, 비슷한 일을 당한 피해자는 이 분을 포함해 총 26명, 피해 금액은 5~6억 원에 이릅니다.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요.

그런데 피해 고객들의 보상요구에, 정작 자동차 본사는 이렇다 할 구제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직접 고용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신분이라, 판매 대리점 혹은 개인의 일이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는 거죠. 여론 악화를 우려해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논의 중이라고는 하지만, 사태 해결에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차를 살 때 지점, 대리점을 구분해서 가는 고객이 몇이나 될까요. 영업사원에게 차를 사는 건, 그 영업사원 개인을 믿는 게 아니라, 그 큰 자동차 회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756조에는, 계약에 의해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제3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기업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직접 고용이 아니더라도 채용부터 본사의 통제를 받았다면, 피해 보상에 대해 본사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지요.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2년 전, 판매 전시장 영업직원의 대금 횡령 사건이 발생하자, 사용자 배상 책임 규정에 따라 차값 비용을 전액 합의금으로 제공했었습니다.

고객들이 대기업에 기대하는 것은 이름에 걸맞은 품질에 대한 믿음, 서비스에 대한 신뢰,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의 합리적인 사후 대처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기업을 믿었던 고객이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면 법적 관계를 따지기 전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게 도리 아닐까요.

차를 팔 때는 고객이 제일이고 '영업맨'을 판매왕이라 추켜세워놓고, 사고가 나면, 직접 고용이 아니라며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 어떤 고객이 그 기업을 믿고 물건을 살 수 있겠습니까. 기업이 주창하는 '고객 제일주의 정신'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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