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벌어준만큼 가져간다…`잭팟` 터뜨리는 증권맨
입력 2018-08-23 17:00  | 수정 2018-08-23 20:03
◆ 레이더뉴스 ◆
'사장보다 돈 잘 버는' 증권사 직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증권업계의 성과보상 체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김연추 한국투자증권 차장(37)이 올 상반기에만 22억원을 받아 오너인 김남구 부회장(13억원)과 최고경영자(CEO)인 유상호 사장(20억원)을 뛰어넘은 게 장안의 화제가 됐지만 이 같은 '보수 역전 현상'이 증권업계에서 새로운 건 아니다. 임원 여부와 관계없이 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회사 내 상위 연봉자 5인을 처음 공시하게 되면서 오너나 사장보다 더 많이 돈을 받는 직원들이 사실로 확인된 것일 뿐이다.
올 상반기에 한국투자증권 2명, 신한금융투자 5명, 하나금융투자 5명, KB증권 5명이 회사의 대표나 오너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김연추 차장과 김동률 신한금융투자 과장(8억원)은 임원이 아닌데도 사장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 고용계약서를 쓰고 보수를 책정할 때 연공서열, 직위, 나이와 무관하게 철저히 '벌어온 돈'에 의해 보수가 책정되는 증권사만의 보수 체계 때문이다.
주가 급등 덕에 직원들이 거액의 스톡옵션을 손에 쥔 셀트리온, 신라젠에서도 2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은 직원들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 임원들보다는 적게 돈을 받았다.

증권사는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돈을 더 많이 번다. 증권사의 핵심 인력인 금융투자업무 담당자는 대부분 계약직으로 구성되는데 100명의 금융투자업무 담당자가 있다면 100개의 고용계약서가 존재한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하고 능력이 있는 직원이라면 연봉 재계약 때 유리한 조건을 넣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급이 짜다는 회사에서도 성과급을 많이 받는 직원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증권사에나 공통점이 있다면 고액 연봉자일수록 성과급의 비율이 크다는 점이다. 가령 김연추 한국투자증권 차장이 올 상반기에 받은 22억원의 총보수에서 21억원이 성과급이다. 기본급은 다른 직원들과 똑같지만 성과급 규모가 압도적이다. 김 차장이 만든 양매도 상장지수증권(ETN)이 시가총액 8000억원대 규모로 커졌고 주가연계증권(ELS) 등 여러 파생상품 운용을 잘해 거둔 성과로 받은 돈이다.
정영희 미래에셋대우 상무도 10억원의 보수 중 9억5700만원이 성과급이었다. 미래에셋대우의 자산관리(WM) 부문이 관리자산 10조원을 돌파한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문성준 하나금융투자 영업상무 역시 지난해 롯데월드타워WM센터에서 신라젠 전환사채 랩을 팔아 800%대 수익률을 거둔 성과로 10억원을 받았다. 유안타증권에서 사장과 비슷한 6억원대 후반의 보수를 받은 임성훈·전기범 차장도 성과급만 6억5000만원 수준이다. 채권 브로커리지로 번 이익의 상당 부분을 보수로 받았다.
본인이 낸 성과에 대해서는 한도 없이 많이 번 만큼 많이 가져갈 수 있다. 통상 지점 영업에서는 본인이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의 30~40%를 보너스로 가져갈 수 있다. 성과급을 많이 준다고 알려진 메리츠종금증권은 그 비율이 50%까지 올라간다. 프라이빗뱅커(PB)들의 경우엔 월별 손익분기점을 초과하는 수익의 10~50%를 가져가는 구조다. 투자은행(IB) 부문은 회사채 인수 규모나 유상증자 규모에 따라 일정 비율로 직원들 보수가 정해지고 WM 부문은 고객 수, 개인금융자산 증감률이 연봉과 연동된다.
증권사마다 성과급의 비중은 차이가 난다. 주로 상여금에 의해 보수가 달라지는 임원들을 기준으로 볼 때 지난해 임원들이 받은 보수 대비 성과 상여금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화투자증권으로 80%였다. 그 뒤를 메리츠종금증권(76%)이 이었다. 메리츠종금증권 관계자는 "최희문 부회장이 메리츠종금증권에 합류하면서 철저히 성과와 공헌도에 기반한 보너스 체계와 합리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해 인재들을 영입해왔다"고 설명했다. 그 외 하이투자증권의 성과급 비율이 56%, 한국투자증권이 51%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부서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성과급이 달라진다. 메리츠종금증권이나 한국투자증권은 개인의 역량에 보다 많은 방점을 두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이 뛰어나고 프로젝트에 많은 공헌을 한 직원이라면 부서가 받은 성과급 중 더 많은 금액을 개인이 가지고 갈 수 있다.
NH투자증권이나 삼성증권은 부서 성과급의 비중이 크다. 프로젝트나 딜이 성사되는 데는 본인의 역량보다는 조직력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사업부 단위로 성과를 측정하며 부서 성과급은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균등하게 배분되는 편이다. 삼성그룹이 초과이익분배금(PS)을 사업부별로 배분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하나의 딜을 따오는 데도 한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플랫폼과 시스템하에서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상도 부서별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형 증권사들에 비해 중견 증권사들이 인재들을 모셔오기 위해 보다 파격적인 보상을 하는 만큼 성과급 비율도 높은 측면이 있다.
직원들의 연봉계약서와 비교하면 대표이사가 받는 보수 체계는 오히려 경직적이다. 성과 중심이긴 하나 워낙 많은 지표를 종합해서 판단하기 때문에 직원들처럼 파격적인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보통 증권사 대표들의 보수를 심사하는 지표는 재무지표, 생산성지표, 건전성지표 등이다. 총영업이익이나 자기자본수익률(ROE) 등을 기본으로 보며 위험조정자본수익률(RAROC·Risk Adjusted Return on Capital)을 통해 리스크에 가중치를 둔다. 여기에다 총영업이익달성률, 영업이익경비율도 감안한다. 리더십으로 임직원들이 이익을 많이 내게 하더라도 국내외 경제환경 등 외부 요인까지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처럼 자기가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가져가기는 힘들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IB사업부 부사장을 역임할 때 부동산 부문을 이끌면서 고액 연봉을 받다가 오히려 사장 승진 후 연봉이 깎이기도 했다. 특히 대표나 임원들 같은 경우엔 증권사에 따라 성과급의 60% 이상을 주가나 ROE와 연계하는 곳이 있는데 지금처럼 증권사 실적과 상관없이 주가가 계속 하락세를 보인다면 보수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이번에 억대 성과급을 받는 직원들이 화제가 됐지만 사실 이번 임직원 보수 공시로 드러난 성과급은 일부분이다. 증권사들마다 성과급의 60%는 다음 해에 바로 지급하지만 40%는 이연성과급으로 3년간 나눠서 지급한다. 퇴사를 방지하고 설계·판매한 상품의 부작용이 드러날 경우 성과급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이연성과급이 이직으로 몸값을 더 높이 받을 수 있는 직원을 제약하는 '황금수갑'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도 있다.
'철저한 성과주의' 본고장 美 월가, 수백억원 받아가는 임직원 수두룩
기본급 100만弗 불과한 모건스탠리 투자부문장, 작년 보너스 715만弗에 주식성과급 357만弗 받아
실적에 따라 철저한 보상이 주어지는 증권사 문화는 미국 월스트리트가 원조다. 매번 되풀이되는 월가 고액 연봉에 대한 논란과 규제책은 미국 투자은행(IB)이 그만큼 파격적인 성과주의에 몰입해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보너스 상당 부분을 주식으로 주기 때문에 본인이 열심히 해 회사 가치를 올린다면 얼마든지 수백억 원대 연봉을 거머쥘 수 있다. 대니얼 심코위츠 모건스탠리 투자부문장은 지난해 보수 1170만달러(약 129억원)를 받았다. 기본급은 1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보너스가 715만달러나 됐다. 여기에다 모건스탠리 주식까지 받았는데 시가가 357만달러 정도다.
다만 월가에서도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을 뛰어넘는 금액을 챙기는 직원 사례가 일상적인 건 아니다. 성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식 기업문화 때문에 만약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계속 가져다주는 직원이 있다면 연봉만 오르는 게 아니라 바로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연봉을 챙겨가는 '잭팟' 사례는 대개 'C레벨'로 불리는 사장급에서 자주 발견된다.
제임스 포리스 씨티그룹 기관고객담당 사장은 지난해 씨티그룹 CEO인 마이클 코뱃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받았다. 그는 기본금 50만달러에 현금 보너스 780만달러를 받아 모두 830만달러 규모 현금 보상을 받았다.
코뱃 CEO는 현금 보상으로는 795만달러를 받았지만 주식으로 980만달러어치를 받아 총액이 1780만달러였다.
2013년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이자 IB 부문 대표인 토머스 몬태그가 현금과 주식 1450만달러를 받아 1200만달러를 받은 브라이언 모이니핸 BoA CEO 연봉을 제쳤다. 주택담보증권(모기지) 부문 손실을 만회하는 과정에서 몬태그 COO가 이끄는 IB 부문의 수익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가 성과와 보수를 일치시킨다면 월가 증권사들은 성과와 보수와 직위를 모두 일치시킨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보너스를 대부분 주식으로 주는 보상 시스템 역시 대표이사→임원→직원 순으로 보수 랭킹이 정해지게 한다. 대표이사가 보너스로 받는 주식 수가 임직원이 받는 주식 수보다 많은 데다 미국 금융주들이 그동안 견조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대표이사 보수 총액이 클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모이니핸 CEO는 2300만달러를 받았다. 기본급은 직원과 별로 차이 나지 않는 150만달러에 불과했고 현금 보너스는 없었다. 다만 한 해 동안 BoA 주가가 33.6% 오르면서 주식 보너스 가치는 2150만달러나 됐다.
2013년 JP모건체이스에서는 '런던 고래' 사건으로 CEO 연봉이 50% 깎이면서 CEO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임원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런 사례가 흔하진 않다. 당시 런던 지점에서 채권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62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을 보자 JP모건체이스 이사회는 제이미 다이먼에게 관리·감독 책임을 묻고 1150만달러 연봉을 삭감했다.
옆동네 부러운 은행원
증권사와 연봉 3천만원差, 은행권 보수킹 15억9천만원…고액연봉 증권사에 밀려
올 상반기 반기보고서 공시를 통해 증권사의 고액 연봉자가 드러나자 은행·보험·카드업계가 증권사 직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임직원의 반기 연봉이 5억원 밑이어서 공시 대상이 아닌 반면 증권업계에선 수십억 원을 받아든 직원 사례가 속출했다.
특히 같은 금융권인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은 부러움 반, 시기 반이다. 업무 내용이 다르다고는 하나 같은 금융업종 내에서 연봉 차이가 현격하게 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택해 은행에 입사하기는 했지만 업무 성과에 따른 성과급 체계가 증권사에 비해 많이 보수적이라는 점이 대비되는 점이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한국씨티·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반기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은행 직원들의 평균 급여는 4750만원이었다. 1년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지난해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1인당 연봉이 4222만원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10대 증권사의 상반기 평균 보수 6117만원과 비교하면 적은 액수다. 은행과 비교해 상위 증권사의 평균 연봉이 3000만원가량 높다. 은행이 연공서열 위주로 임금체계가 짜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무연수가 짧은 직원들이 느끼는 체감 연봉 격차는 더 크다.
더구나 공시 대상인 5억원 이상의 급여 대상자로 한정하면 더욱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진다. 가령 은행권 중 최고 연봉은 총 15억9100만원을 받은 박진회 씨티은행장이며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7억2500만원, 허인 KB국민은행장은 8억7500만원 수준이다. 윤종규 KB지주 회장의 상반기 급여는 5억원 미만이었다. 증권사에서는 상무급에서도 15억원 이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 금융사 직원은 "직업안정성 같은 은행권만의 장점이 희석되는 상황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영업 압박으로 따지면 증권사와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받는 돈이 너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은행과 증권의 업무 강도가 다른 만큼 높은 보상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이자수익이 주된 사업이고 고정 고객이 확보되어 있는 은행에 비해 증권사들은 고객 쟁탈전이 심하고 돈이 될 만한 신사업도 계속 찾아야 한다는 해명이 나오고 있다.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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