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단독] 용산개발 `난제` 수면위로…서부이촌 시유지아파트 재건축 시동
입력 2018-08-19 17:33  | 수정 2018-08-19 18:11
강변북로 위에 설치된 육교에서 바라본 서울 서부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단지 모습. 중산시범아파트가 세워진 시유지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서 한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꼽힌다. [용환진 기자]
용산 마스터플랜 발표를 앞두고 시유지 위에 지어진 서부이촌동 노후 아파트 재건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시유지 아파트 주민과 서울시·용산구 입장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용산구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한강변 시유지를 적극 활용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지어 계속 거주하길 원한다. 코레일이 드림허브와 벌였던 용산 역세권 토지소유권 분쟁이 마무리되면서 한숨 돌리게 되자 이번에는 그동안 잠재돼 있던 서부이촌동 시유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서울시가 준비 중인 용산 마스터플랜에는 서부이촌동 시유지 활용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서부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소유주 266명 중 213명(80%)으로부터 시유지 매입 동의서를 걷어 지난 2일 용산구청에 제출했다. 중산시범은 건물은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지만 땅을 서울시·용산구·정부 등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건물 소유주들은 재건축을 하려면 서울시 등으로부터 땅을 반드시 매입해야 한다.
조봉연 중산시범 재건축추진위원장은 "서울시가 소유주 75% 이상의 동의서를 가져와야 시유지 매입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해 1년 가까이 소유주들을 일일이 수소문하고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동의서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중산시범은 관리사무소가 아예 없는 데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역시 공석이다. 보통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유주 연락처나 주소록을 갖고 있지만 중산시범은 이 같은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중산시범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시유지 매입 동의를 받기 위해 세입자들에게 집주인의 주소나 연락처를 일일이 물어봐야 했다.
중산시범 토지 매입 움직임은 인근 시유지 아파트로 확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촌시범아파트도 중산시범처럼 시유지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중산시범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중산시범의 시유지 매입 동의서 제출 소식을 전해 들은 이촌시범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가 얼마 전 동의서 서식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들 시유지 아파트 재건축의 관건은 시유지 매입 가격이다. 현재 중산시범의 개별공시지가는 3.3㎡당 2706만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토지 매입은 일반적으로 감정평가액에 따라 이뤄진다"며 "대개 감정평가액은 개별공시지가의 2.5배 수준이기 때문에 서부이촌동 시유지 아파트 주민들은 대략 3.3㎡당 6800만원에 땅을 매입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건축 분담금까지 감안하면 가구당 부담액은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산시범 소유주들이 이 같은 부담을 선뜻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이런 부담을 지고도 충분히 재건축 사업성이 나올지가 미지수이다. 서울시가 동의하더라도 실제 시유지 매입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중산시범 주민들은 감정평가액은 물론 개별공시지가보다도 훨씬 낮은 금액을 원하고 있다. 과거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 서울시가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재건축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시유지를 매입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개별공시지가가 치솟았으니 20년 전 가격으로 시유지를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주민은 중산시범이 대지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입주민이 대지 소유권을 가진다는 내용의 분양계약서와 서울시 문서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시범아파트보다 소득 수준이 한 단계 더 낮은 주민들이 거주했던 바로 옆 시민아파트(재건축 후 북한강성원아파트) 소유주들도 땅 소유권을 갖고 있었다는 점, 중산시범 주민들이 단 한 번도 서울시에 임차료를 낸 적이 없다는 점도 정황상 근거로 제시한다.
중산시범 주민 문수동 씨(60)는 "중산시범 주민들이 과거에 땅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것은 재판 당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이를 입증할 만한 문서를 확보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노후된 시범아파트 주민들에게 상암·장지·강일 등 택지지구 입주권을 부여했다. 서부이촌동 시유지 아파트 주민은 용산 국제업무지구 내에 마련될 주거시설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 추진 당시 정부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을 위해 용산역 남쪽 철도라인을 따라 60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주거단지를 계획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주거시설을 지어 일부 시설에 중산시범 등 아파트 주민들을 입주시키고 서부이촌동 시유지를 국제업무지구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산시범 주민들의 입장은 강경하다. 한 주민은 "한강 조망권을 원해 이곳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결코 조망권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없다"며 "강제로 이주시키려 할 경우 제2 용산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부이촌동은 2000년대 후반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처음 추진될 때 용산 철도정비창 용지와 함께 국제업무지구에 포함됐던 곳이다. 당시 정부는 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성공하려면 한강과 맞닿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한강은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물류 흐름의 주된 통로였지만 남북 간 냉전이 전개되면서 일시적으로 그 기능을 상실한 바 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될수록 물류 중심지로서 한강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한강과 연결돼야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좌초된 뒤 국제업무지구에서 해제됐지만 용산 철도정비창 용지와 한강 사이에 위치한 서부이촌동의 입지적인 중요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북한강성원, 한강현대, 이촌대림 등이 용산 국제업무지구와 한강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만 서부이촌동에 있는 시유지를 이용하면 국제업무지구가 한강과 연결될 수 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도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서부이촌동의 시유지를 활용해 한강에서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조망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