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솔직한 내 마음…그게 예술이야"
입력 2018-08-01 16:52 
코코 카피탄<사진제공=대림미술관>

사진 작가 코코 카피탄(26)은 스페인 남부에서 태어나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러나 8년전 영국 런던 패션대학 사진과에 입학했을 때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엄격한 영국식 교육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열 여덟살 예민한 시기에 정체성 혼란을 겪던 그는 초상 사진을 찍었다.
1일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던 10대 시절에 내 사진을 찍으면서 자아를 탐구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열 세살 여름방학때부터 혼자 여행을 하면서 초상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불안을 지우고 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죠. 지금은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겨 잘 찍지 않아요. 부끄러움이 많아 내 사진을 보는게 쉽지 않죠."
코코 카피탄
사진 외에도 글, 그림, 영상, 설치 미술 작업 등을 통해 혼란스러운 심경을 표출했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그의 작업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한 세대)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정체성 혼란은 젊은 세대들의 공통 고민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남부는 소비 문화·자본주의와 거리가 먼 곳이었어요. 친구들과 어떤 옷을 입을 지 별로 고민하지 않았죠. 그런데 영국에서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는게 중요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집 스타일과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지에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코코 카피탄 <사진제공=대림미술관>
대림미술관 개인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내년 1월 27일까지)에서 그의 성장통과 예술가로서 고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담은 작품 150점을 펼쳤다. 난로 위에 올라가거나 담요를 걸치고 욕조에 들어가 있는 작가의 초상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사진은 패션 업계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명품 브랜드 구찌와 멀버리, 패션 잡지 '보그' 등과 협업하면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상의를 입은 채 엉덩이를 드러낸 '하의 실종' 패션 화보가 유난히 많았다. "패션을 너무 진지하게 다루는게 지루했어요. 계속 반복되는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었죠. 하지만 전 재미있게 찍고 싶어 바지나 치마를 벗게 했어요. 패션이 없어도 패션을 볼 수 있게요."
Girl in Yellow <사진제공=대림미술관>
지난해에는 그의 핸드라이팅(손글씨)으로 디자인된 구찌 가을·겨울 컬렉션 콜라보레이션(협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I want to go back to be-living a story(돌아가고 싶은 동화를 믿었던 시절)', 'Tomorrow is NowYesterday(내일이 이미 어제가 됐다)' 등이 새겨진 티셔츠와 벨트백 등이 화제였다.
"구찌와 협업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과 작업 방식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구찌에서 내 사진이 아니라 핸드라이팅에 관심을 가져 너무 놀랐죠. 제가 평소 끄적인 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보는게 여전히 충격적이에요. 예술이나 상업이나 솔직하게 나를 드러낸 작품이 반향을 일으키더군요. 제 예술 인생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죠."
그의 작품은 뉴욕·밀라노·피렌체·마이애미 구찌 건물 외벽까지 장식했다. 대규모 야외 작업은 처음이었다. 작가는 "길거리에서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 앞에 내 작품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소통을 하게 됐다. 내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기거나 이메일이 쇄도했다"고 말했다.
All Cars are Conditioned to Bad Weather<사진제공=대림미술관>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온 작가는 죽음마저 긍정했다. 전시장 3층에는 지난해 여름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포착한 버려진 건물과 도로, 교회와 묘지 등을 통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삶에서 죽음까지 여정이 매우 짧다는 것에 영감을 얻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의미 없는 것에 너무 많은 걱정을 하죠. 죽음을 회피하기보다는 죽음이 있기에 살아야 해요. 열심히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야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삶이 지루하다는 작가는 "아티스트로서 경계를 허무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성공했으면서도 "성공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전시장 벽에는 이런 응원 메시지를 적어놨다. "열렬히 꿈을 쫓는 사람들, 그렇게 살아가는 너를 응원해, 그러한 노력은 오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을 살 수 있게 할거야."
코코 카피탄 전시장 전경<사진제공=대림미술관>
주 6일,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는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을 찍은 사진과 실내 수영장 설치물을 보면서 111년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을 잠시 잊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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