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잡아라 잡(JOB)] `하루 8끼`는 기본…최고의 밥맛을 찾는 `밥소믈리에`
입력 2018-07-30 10:23 

"한국인은 밥심(心)"이라고들 한다. 주식이 쌀인 우리에게 밥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충 건너뛰기 보단 한끼라도 제대로 먹으려는 이들이 많아졌다. 간단한 삼각김밥, 도시락 등에서도 집밥과 같은 '밥의 맛'(米味)을 원한다. 다양한 종류의 반찬들로 무장한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기본인 밥의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 본연의 감칠 맛을 살리고 냉장상태에서도 밥의 맛을 떨어뜨리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밥'만 바라보는 이가 있다.
원재료인 벼의 상태부터 각각의 품종에 맞는 취반기술, 영양, 사후 보관까지 밥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하민아(31·사진) 밥 소믈리에(밥 감정사)가 그 주인공이다.
흔히 소믈리에는 서양 음식점에서 손님이 주문한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와인에 한정하지않고 소믈리에와 다른 단어를 합쳐 다양한 맛을 조합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결국 밥 소믈리에는 쌀에 대해 관능 평가가 가능한 '밥 전문가'를 말한다. 밥 소믈리에는 결국 쌀눈은 얼마나 깎아 냈는지, 몇 도에서 얼마나 건조했는지, 어디에 보관하였는지, 어떻게 몇 번이나 씻었는지, 몇 분 동안 가열하고 뜸을 들였는지 등 밥 짓는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사람이다.
롯데푸드 델리카영업팀 개발담당자로 밥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 지 6년이 됐다던 하 연구원은 '밥맛'을 찾고 즐기는 재미에 폭 빠져있다고 말했다. 삼각김밥과 도시락에 들어가는 밥을 개발하고 품평하는 게 일이다 보니 제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밥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밥을 찬찬히 곱씹어 보면 단 맛, 고소한 맛, 담백한 맛 등 품종과 취사 방법에 따라 다양한 맛이 느껴져요. 도시락, 삼각김밥은 만들자 마자 냉동상태로 보관돼 전국 편의점으로 이동 후 냉장식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나가잖아요. 그 상태에서도 맛있는 밥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고의 취사법을 발견하기 위해서 연구 기간에는 하루 8끼는 먹는 건 기본이에요."
하 연구원의 일은 쌀을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연 1회(9~10월께) 각 산지마다 쌀을 수급해서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올 한해 사용할 햅쌀을 정한다. 쌀 품종이 결정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밥소믈리에로서 하 씨의 '활약'이 시작된다. 제품화했을 때는 상품의 종류에 따라, 수급량과 외부 온도에 따라 미묘하게 맛도 변하기 때문에 쌀의 상태에 맞는 취사값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달 정도 해당 쌀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이때 도시락 70인분의 밥을 생산할 수 있는 연구소 내 대형 취반기에서 밥을 짓습니다. 물의 양과 화력 세기, 뜸들이는 시점 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밥의 찰기와 식감이 달라 매번 이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밥소믈리에가 해야할 일이에요."
이 때 하 연구원이 먹는 밥의 양만해도 500g 내외. 하루 평균 성인 쌀 권장량이 약 170g인 것을 감안하면 한 끼에 약 3배 가까이 먹는 셈이다. 진정한 밥의 맛을 구별하고 평가하기 위해 반찬도 곁들이지 않고 밥 자체에만 집중한다.
지난 2012년 하 연구원이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취득한 밥소믈리에 자격증. 현재는 공익 사단법인 일본취반협회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이 거의 유일하다.
하 씨를 포함해 국내에서 밥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이들은 70여명.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이지만 그동안 밥맛(味)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은 탓에 밥소믈리에라는 직업도 생소하다. 국내에서도 자격증을 딸 수 없어 이웃나라 일본까지 건너가야만 한다. 공익 사단법인 일본취반협회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이 업계내에서는 유일한 자격증 취득 기관이기 때문이다. 롯데푸드중앙연구소 또한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부터 밥소믈리에 양성에 눈을 돌렸다. 매년 1~3명씩 밥소믈리에 자격증 취득을 위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저 역시 처음에는 밥소믈리에가 무엇인지도 몰랐으니 말 다한거죠. 국내와 달리 일본의 경우 각 지역마다 고유의 품종 쌀을 생산하고 있고 관련 시장도 커요. 밥소믈리에에 응시하는 수험생 또한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연령대가 다양하고 직무활용도도 높습니다. 제가 볼 때(2011년)만 해도 한국인 시험자는 전체 100여명 응시자 중에 7명 정도였으니 관심도에서도 차이가 나는겁니다."
하지만 국내서도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커지면서 잘 만든 밥을 찾는 수요도 늘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자격증으로만 보기 보다 식품 기업과 연구소 등에서 이를 내세운 전문가로 활동한다면 밥소믈리의 활용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늘어난 소비자 수요만큼 HMR 시장도 성장하면서 제품 간 경쟁력도 치열해졌어요. 반찬이나 특색있는 콘셉트도 중요하지만 제품 본연의 힘인 밥에 소믈리에 능력을 더한다면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하 연구원의 혼신의 밥 애정이 담긴 제품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처음 제가 개발한 제품은 안동찜닭삼각김밥이었습니다. 도시락과 달리 삼각김밥은 밥에도 조미료가 가미되기 때문에 찜닭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밥 맛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었어요. 이후 도시락 제품은 고추장삼겹살과 돼지갈비 도시락 등 반찬의 간이 쎈 제품들을 개발했어요. 이때도 염도와 조미료에 따라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의 밥의 찰기나 식감의 최적 조합을 찾는 게 우선이였습니다. 정말 잘 만든 밥으로 소비자들에게 내놓고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밥 소믈리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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