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즈CD 구하려 美 회사에 이메일 보낸 고등학생…300억 직구몰 대표로
입력 2018-07-27 13:12 
김영하 빅피쉬벤쳐스 대표 [사진 제공 : 빅피쉬벤쳐스]

#. 1990년대 고등학생 시절, 재즈에 푹 빠져 희귀 재즈 앨범을 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해외 음반 사이트에 접속했다. 당시에는 CD로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선전화망을 이용해 PC통신을 하던 때라 앨범 이미지를 확인하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릴 때였다.
재즈 빅밴드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의 앨범을 구하기 위해 지금은 아마존에 인수된 CD나우에 이메일을 보냈다. 담당자와 연락이 닿은 후에도 온라인 결제시스템은 물론 회사 전용 계좌조차 없어 우편을 이용해 송금하는 우편환으로 앨범 값과 배송료를 지불했고, 중간중간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 받아 결국 앨범을 품에 안았다. 이메일을 보낸지 3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커티스 풀러의 블루스 앳지 앨범을 손에 쥐었던 고등학생은 20여 년 뒤 직구몰 대표가 됐다. 유럽 전문 직구몰인 로로몰을 운영하는 빅피쉬벤쳐스의 김영하 대표(40) 얘기다.
김 대표는 M&A 전문가 출신이다. 지난 2003년부터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JP모건의 M&A(인수합병) 부서에서 근무하다 게임회사로 자리를 옮겨 네오위즈게임즈에서 M&A팀장으로, 현대카드캐피탈에서 M&A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했다. 런던과 홍콩을 오가며 영국 사모투자전문회사 사핀다에서 중역으로 일하던 그는 런던비지니스스쿨에 입학해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밟다 2015년 빅피쉬벤쳐스(BFV)를 설립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위워크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투자회사에서 많은 기업 대표와 창업자를 만나면서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면서 "새로운 사업은 이제 찾기 어렵다. 기존 사업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없애 소비자 불편을 해소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뒀다"고 밝혔다.
평소 직구에 관심이 많던 김 대표는 유통업의 세계화와 달리 배대지(배송대행지) 설정과 AS(애프터서비스) 등 직구에서는 아직까지 소비자 불편이 많단 점에 착안했다.
그는 "해외 출장이 잦아 지인들로부터 해외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을 사달란 부탁을 많이 받았는데, 대부분 국내에 진출하지 않았을 뿐 현지마트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며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제품 정보는 쉽게 찾지만 정작 접하기는 비싸고 어려운, 그 간극을 좁히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BFV는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영국 상무부 산하 영국무역투자청의 공식 이커머스 어드바이저(Official e-Exporting Advisor)로 지정됐다. 영국 기업들이 이커머스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 진출할 때 어드바이저 업체들의 도움을 받는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영국 1위 유기농 브랜드 엘라스키친이다. 로로몰의 연관검색어로 엘라스키친이 뜰 만큼 지금의 로로몰을 만든 제품이기도 하다. 엘라스키친 관련 매출만 매달 수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처음 엘라스키친에 제안서를 넣었는데 담당자로부터 '한국 시장엔 관심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회장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제안서를 다시 넣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마추어였다. 목표 매출 등 구체적인 사업 내용 없이 한국 유기농·유아동 시장 트렌드와 성장 가능성을 주로 담았다"며 웃었다. 이어 "미숙한 제안서였는데 이게 오히려 회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 시장에 흥미가 생겼다'며 BFV에게 전권을 맡긴단 의미로 유일한 공식 파트너를 제의했다"고 말했다.
로로몰은 현재 엘라스키친, 압타밀 등 유아동 전문 제품 외에도 디트리쉬, 다이슨, 꼬달리, 유리아주 등 유럽 172개 브랜드, 4500여개 상품을 판매한다. 유럽 생산자와 아시아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손쉬운 직구몰을 목표로 영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 국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서울과 홍콩을 포함해 유럽에 현지 거점을 구축했다. 자체 개발한 유럽 직구 프로토콜을 통합해 배송 과정을 일원화한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기존 직구몰은 배송기간은 물론 AS(애프터서비스)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도 한다"며 "현지 물류 거점을 중심으로 소싱·통관·배송·AS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일하고, 해외 금융기관과 협업해 판매자에게 기존 60일이던 정산기한을 3일로 대폭 줄이면서 현지 수준으로 가격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품이 각 지역에서 배송되는 게 아니라 물류센터를 거치기 때문에 유럽 전 지역 제품을 묶음배송할 수 있는 것도 로로몰의 강점이다. 김 대표는 현재 테스트 중인 최저가보상제를 다음달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인 만큼 가격에 자신감을 보였다.
로로몰은 재구매율은 87%로, 사용자 경험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유아동 전용 제품은 물론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전반으로 운용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또, BFV는 자동으로 SNS 키워드를 데이터로 수집해 특정 키워드 검색량이 높아지면 이를 MD(상품구색)로 이어지도록 하는 자체 시스템을 갖췄다. 김 대표는 "현재는 인기있는 제품 위주로 판매하지만, 이후에는 아직 국내 알려지지 않는 해외 특정 브랜드를 소개하고 유행시키는 방법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로로몰 홈페이지 첫화면 [사진 제공 : 빅피쉬벤쳐스]
국내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약 65조원으로, 이중 직구 시장은 2조2000억원대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간편결제시스템과 오프라인 대비 낮은 가격, 다양한 상품구색으로 이커머스 시장이 확대되는 것과 달리 직구는 '번거롭고 비싸다'란 인식 때문에 아직 눈에 띄는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물류 프로토콜을 일원화해 편리한 쇼핑 환경을 구축한 만큼 소비자에게 우리 플랫폼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 이커머스 회사들과 협업하는 식으로 직구 시장을 키우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며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은 물론 키즈카페 등 접점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기업과도 협의 중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플랫폼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지난해 4월 로로몰이 첫선을 보인 뒤 올해 연 거래액만 3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유럽 파트너 중 자국 내 유통을 담당하는 사업자들이 있는 만큼 향후에는 국내 기업의 믿을 만한 유럽 진출 채널로도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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