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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위 개편` 빠진 국민연금 주주권 이행 로드맵
입력 2018-07-17 17:52  | 수정 2018-07-17 20:24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 공청회에서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로드맵에 대해 토론자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스튜어드십코드 3大쟁점 ◆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출항 채비를 마쳤다.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공청회를 열어 여론 수렴 절차도 거쳤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방안'을 발표하면서 재계가 우려하는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는 당분간 유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부쩍 강화된 주주활동 수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이 기업을 향한 칼끝을 예전보다 더욱 예리하게 가다듬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입 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안에 △배당 관련 주주활동 개선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 △주주대표 소송 근거 마련 △손해배상 소송 요건 명문화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어 내년에는 △중점관리사안 추가 선정·확대 △기업과 비공개 대화 확대 △이사회 구성·운영, 이사·감사 선임 등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위탁운용사 활용한 주주활동 확대 등에 나선다. 하지만 스튜어드십코드를 둘러싼 3대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로부터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국민연금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반쪽 성과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개된 방안은 민간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권한을 맡기는 방안을 담았지만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자 복지부 장관이 지휘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 대한 개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번 방안을 발표하면서 정부 인사를 배제한 전문가 중심의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설치해 주주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항을 검토·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는 기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14인 이내로 구성되는데, 기금운용본부가 요청하거나 수탁자책임위원회가 결정한 의결권에 대해 행사 방향을 결정하고, 공개중점관리 기업, 공개서한 발송 등의 주요 주주활동을 도맡는다.
민간전문가로 구성되는 신설 기구 역시 정부 입김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이날 함께 발표된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가 수탁자 책임에 관한 정책과 지침을 정하고, 수탁자책임위원회는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기구에 머물러 있다. 중요 의결권의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이 역시 기존 의결권전문위원회에서 수행해왔던 역할과 크게 차이가 없다. 아울러 수탁자책임위원회 구성 역시 기금운용위원장인 복지부 장관이 가입자 대표, 기관 등의 추천을 받아 최종 위촉하는 형태로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공청회에서 관련 문제 제기가 이뤄지기도 했다. 황인학 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민 입장에서는 대리인인 국민연금이 어떻게 적절히 기금을 관리하는가가 관심사인데 국민연금이 기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정치권력과의 이해 상충 문제도 포함해서 국민 재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수탁자 책임원칙에 명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주주총회 이전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개한다는 점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주총 전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개하면서 민간 자산운용사들과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한 여론몰이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당 조치는 국민연금이 가진 의결권 일부를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임해 과도한 영향력을 내려놓겠다는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국민연금과의 관계에서 '절대 을(乙)'인 민간 자산운용사로서는 국민연금의 사전 결정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경종 한국투자신탁운용 컴플라이언스 실장 역시 이날 공청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사전 공시하는 부분은 국민연금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다른 민간 운용사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의결권 위임으로 총을 줬으면 총알도 주는 편이 맞는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 가장 크게 우려했던 사안인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배당 관련 주주활동 강화, 주주대표 소송 근거 마련에 나서고, 내년에는 횡령·배임 등 기업가치와 밀접한 분야에 대해 비공개 대화를 하기로 했다. 2020년부터는 한발 더 나아가 공개서한 발송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도한 기업 경영 간섭 우려와 관련 법 미비로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우선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는 유보했다지만 향후 의결권 위임장 대결과 이사·감사 후보 추천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도 제반 여건이 구비되면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재계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하지는 못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 역시 현재 상법과 자본시장법의 체계가 바뀌지 않고서는 국민연금의 실효성 있는 경영 참여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상법이 지나치게 기업친화적이라는 의견도 함께 제시해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최경일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모든 주주제안이 다 경영 참여로 분류돼 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연기금 입장에서는 제도상 실제 경영에 참여하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정우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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