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단독] 이주비 막힌 재건축에 등장한 `年 11% 고리`
입력 2018-07-17 17:31  | 수정 2018-07-17 21:47
이달 들어 이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전경. [매경DB]
정부가 서울 강남 재건축단지에 대한 이주비 대출을 옥죄자 규제 틈새를 노린 증권사들의 고금리 대출이 파고들고 있다.
증권사들이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우고 투자자들에게 펀딩을 받아 이 투자금을 재건축조합에 이주비 대출 명목으로 내주고 이자를 받는 식이다. 연 11% 고금리를 요구하는데 이주가 임박했으나 대출을 못 받고, 조합원 지위도 팔 수 없는 조합원 입장에선 고리(高利)도 내칠 수 없는 '딜레마'가 벌어지고 있다.
17일 매일경제신문이 강남 복수의 재건축단지에서 입수한 '재건축사업 이주비 추가 대출 제안서'에 따르면 M증권사 측은 현재 아파트 시가의 20~30% 수준에 불과한 이주비 대출을 시가의 50%까지 추가 대출해주겠다고 이달 초 제안했다.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에서 서울 전 지역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에서 이주비를 포함한 금융권 대출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 미만으로 낮췄다. 일선 은행에선 사업시행인가 시점에서 평가한 감정평가금액을 기준으로 최대 40%까지 내주고 있어 조합원들이 실제 받을 수 있는 이주비 대출은 현재 시가의 20~30% 수준에 그친다.
이마저도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갚아야만 받을 수 있는 액수다. 예를 들어 현재 시세 10억원, 사업시행인가 당시 감정평가액이 7억원인 재건축 아파트 소유자는 현재 2억8000만원까지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M증권사는 "현재 시가의 절반(5억원)까지인 2억2000만원의 이주비 대출을 추가로 내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주를 앞둔 강남 재건축조합들은 "이주비가 부족해 집을 못 비운다"는 조합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을 살 때 이미 빚을 지고 있던 조합원들은 추가 대출이 어렵다. 소득이 없는 노년층은 전세자금대출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막힌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재건축사업 시공사(건설회사)의 추가 이주비 대출마저도 금지했다. 강남권 한 대형 재건축단지 조합장 A씨는 "조합원 중 30% 이상이 현재 이주비 대출로는 도저히 이주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서 이주 시기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돈 냄새'를 맡은 셈이다. 증권사들은 특수목적회사가 펀딩을 받아 재건축조합에 투자하는 방식의 이주비 대출 금융구조를 짜냈다. 특수목적회사는 금융회사가 아니고, 펀딩을 통해 재건축조합에 투자하는 행위도 일반대출로는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대신 특수목적회사는 재건축조합 측에 조합원 소유 토지의 2순위 근저당담보권을 요구했다. 시가의 50%까지만 대출해주기 때문에 LTV 40% 수준의 은행대출이 1순위 근저당권으로 잡혀 있더라도 투자자 리스크는 거의 없는 셈이다.
M증권사는 투자자들의 이윤과 투자은행(IB)의 수수료를 합쳐 연 7~11% 이자를 재건축조합 측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M증권사 측 제안을 받은 재건축조합 관계자 B씨는 "두 자릿수 이자는 거의 대부업체 수준인데 근저당권까지 다 설정하면서 이렇게 높은 이율을 요구해서 놀랐다"며 "정부가 억지로 이주비 대출까지 묶어서 이사를 갈 수도 집을 팔 수도 없게 해놓으니 증권사들만 배부르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M증권사 관계자는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아직 정상계약을 체결한 건 없고 관련 부처에 공식 질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전범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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