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이드북 들고 덕지순례"…화제의 `BTS 투어` 해보니
입력 2018-07-06 17:19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 = 연합뉴스]

세계로 뻗어가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흔적을 찾아 해외 팬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과거 한류 팬들은 콘서트, 팬미팅 중심의 한국 투어를 선호했다면 최근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들은 멤버들과 관련된 장소들을 정해 '도장깨기' 식으로 좋아하는 아이돌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덕지순례'(덕후+성지순례)라는 말도 생겼다.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ARMY)'의 팬카페에는 덕지순례 초보자들을 위한 '방탄투어 가이드북'이 등장했다.
기자는 지난 5일 초여름 무더위 속에 직접 'BTS 투어'를 떠났다. 방탄소년단이 즐겨 찾았다는 식당부터 멤버들의 굿즈(팬 상품)을 살 수 있는 캐릭터스토어까지 방탄소년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루 일정을 짰다.
방탄소년단의 연습생 시절 단골 식당으로 알려진 서울시 논현동의 '유정식당'. [사진 = 문혜령 인턴기자]
서울 논현동에 있는 '유정 식당'은 BTS 투어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필수 코스다. 이 식당은 이전 방탄소년단의 연습실과 같은 건물에 있어 그들이 가수의 꿈을 키우던 때 자주 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점심 식사를 하기엔 이른 오전 11시께부터 식당은 외국인 관광객과 손님들로 붐볐다. 금강산도 식후경. 기자는 식당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석진'(멤버 '진'의 본명)의 지정석으로 불리는 자리에 앉았다. 식당 벽면들은 아미들이 정성스럽게 꾸민 사진과 액자, 스티커들로 가득했다. 메뉴판을 가져 온 직원은 "소속사에서 준 브로마이드도 있지만 대부분 팬들이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유정식당'의 내부 벽면. 팬들이 가져 온 방탄소년단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사진 = 문혜령 인턴기자]
메뉴판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병기돼 있었다. 이 중에서 빨간색 점이 찍혀 있는 메뉴가 눈에 띄었다. 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단골 메뉴'로,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자주 앉던 자리 등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따로 표시를 해놓았다는게 직원의 설명이었다. 기자도 눈치껏 빨간 점이 하나 붙은 '흑돼지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하지만 기자는 이내 손을 들고 우렁차게 '비빔밥'을 외친 것은 큰 불찰이었음을 깨달았다. 옆 테이블의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들께서는 같은 음식을 주문하며 "여기 방탄 2개"라고 외쳤다. 곧이어 들어 온 말끔한 차림의 직장인들도 너도나도 '방탄비빔밥'을 찾았다. 이곳에서 비빔밥은 '방탄'으로 통용됐다. 각국의 젊은 외국인 여성들과 중년 직장인들이 식당 안에서 함께 '방탄'을 찾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방탄비빔밥'으로도 불리는 '흑돼지돌솥비빔밥'. [사진 = 문혜령 인턴기자]
6년 전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있을 때부터 이곳에서 일을 했다는 한 직원은 "중국·일본·태국 등 다양한 국적의 해외 팬들이 오는데 손님이 많을 때는 밖에서 수십명 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며 "최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포함한 일반 손님들도 들어오면서 '방탄소년단'을 말씀하신다"며 웃었다.
기자가 두번째로 찾아간 장소는 식당에서 도보로 10분 내외 거리에 있는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건물이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013년 최대 3년 가량의 연습 생활을 거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데뷔했다. 30도를 웃도는 한낮 기온 속에도 대여섯명의 여성 팬들은 사옥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서성이고 있었다. 일부 팬들은 손편지나 선물을 놓아두기도 했다. 미국에서 왔다는 방탄소년단의 팬 에밀리(38)씨는 "5년 전부터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빠졌다"며 "일반적인 아이돌과 달리 그들의 노래 가사엔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그것이 지닌 음악적인 힘에 끌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후 K팝 뿐만 아니라 K드라마에도 관심을 갖게 돼 처음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앞서 방문한 유정 식당을 추천해주니 손 끝부터 놀라움을 표현하는 몸짓과 함께 가는 길을 물어봤다. 그와 1일 '아미'를 자청한 기자 사이 묘한 유대감이 형성됐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 [사진 = 문혜령 인턴기자]
'1일 아미'로서의 자부심이 차오를 때쯤 기자는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태원에 위치한 'BT21' 캐릭터 스토어를 찾았다. 'BT21'은 '방탄소년단 21세기'라는 의미로 방탄소년단과 캐릭터 브랜드 라인프렌즈가 콜라보레이션해 탄생한 새로운 캐릭터 브랜드다. 멤버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캐릭터들로 만든 인형, 쿠션, 피규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태원 '라인프렌즈 스토어'에 있는 'BT21' 캐릭터 스토어. [사진 = 문혜령 인턴기자]
역시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묘미는 기념품점. 매장 내에서는 방탄 소년단의 'FAKE LOVE'가 흘러나왔다. 기자는 'BT21'이 쓰인 '힙합 스타일' 의상과 모자 등을 몸에 대어봤다. 방탄소년단의 팬으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들은 저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에서 온 대학생 야야(22)씨는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어렵게 질문하는 기자에게 "한국어로 하셔도 돼요"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엄청난 팬"이라며 "한국에서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도 내 또래 사이에서 방탄소년단은 이미 유명인사다"고 말했다.
라인프렌즈 캐릭터 스토어의 한 직원은 "매장에 BT21이 들어 온 이후로 외국인 손님들이 하루에 300~400명 정도 더 늘었다"며 "그 중 70~80%는 여성 고객이고 최근에는 일본·중국 뿐만 아니라 유럽·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온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 한 캐릭터로 만든 인형. [사진 = 문혜령 인턴기자]
한나절 동안 'BTS 투어'를 체험한 기자에게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뜨거운 열정을 쏟았던 가수에 대한 아련한 기억부터 '방탄소년단'이 열어 놓은 한국 대중 음악의 새로운 길까지. 취재 과정에서 만나게 된 여러 외국인들의 얼굴에 녹아 있던 기쁨은 기자에게 작은 희망으로 느껴졌다.
[디지털뉴스국 문혜령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