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에서] 손에 돈을 쥐면 그때 과세해라
입력 2018-07-04 11:41  | 수정 2018-07-11 17:30
정부가 드디어 보유세 강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시가 20억 원이 넘는 주택을 갖고 있거나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방안인데, 여기에는 소형주택 임대료에 대한 세제혜택을 폐지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세금 부과에 반영되는 아파트 값 등을 현실화하면 4년 뒤에는 최대 25%가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보유세 강화에는 찬성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금을 강화하면 부동산 시장은 안정되겠지만, 과연 우리 사회의 미래와 세제 개편 방향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듭니다.



■ 미실현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맞나?

10년 전에 5억 원을 주고 아파트를 구입한 200만 원 연금생활자 A씨의 경우를 살펴보죠. 그 아파트가 15억 원이 되었다고 해서 과연 A씨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내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해당 아파트 가격이 올랐으니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가 국민적 저항을 받고 실패한 원인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부동산 세금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잡아 미국의 재산세율은 1%에 달합니다. 가령 10억짜리 아파트이면 1년에 1천만 원 이상을 재산세로 내야 하는데, 눈길을 끄는 점은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구입가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같은 아파트면 같은 세금을 내지만, 미국은 자신이 10년 전에 3억 원을 주고 샀으면 3억 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고, 해당 아파트를 10억 원을 주고 샀으면 10억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갭 투자가 발붙이기 쉽지 않고, 세금을 감당할 사람만 비싼 아파트를 사기 때문에 이렇게 집값이 폭등할 가능성이 작아집니다.


미국의 양도세 역시 실현이익을 기본으로 합니다. 가령 B씨가 20평대 아파트를 3억 원에 사서 해당 아파트가 5억 원이 됐고, B씨는 아이들이 커서 그 아파트를 팔고 6억 원짜리 30평대 아파트를 다시 샀다고 해보죠
우리나라 같으면 3억에 사서 5억이 된 만큼 2억 원에 대해 양도세를 물리지만 미국은 양도세를 미뤄줍니다. 그 이유는 아파트로 번 수익이 고스란히 6억짜리 아파트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당장 손에 쥔 소득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5억 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4억 원짜리 아파트로 이사 가면 이에 대한 차익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매깁니다.
여기에서 재밌는 점은 55세가 넘으면 1차례에 한 해 자신이 사는 집보다 싼 집으로 가도 양도세를 매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습니다. 첫째 아이들이 이제 커서 독립했으니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라는 의미인데, 그래야 아이를 키우는 또 다른 가정이 큰 집으로 이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집 판 돈을 가지고 은퇴자금으로 쓰라는 것인데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청년들은 어디에 사나?

60제곱미터 이하이고 기준시가가 3억 원 이하인 소형주택의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 혜택이 대폭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조그만 아파트 임대수입으로 살던 사람들의 세 부담이 늘어나게 됩니다. 청년들은 돈이 없으니 누군가 집을 사서 임대를 해줘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게 되고 건설업체들은 분양이 안 되니 공급을 줄일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세금을 올리면 집주인으로서는 자연스레 임대료를 올리게 됩니다.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 공급하면 되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행복주택의 실패 사례는 우리 기억에 생생합니다.
결국, 청년들이 저렴하게 거주할 공간은 줄어들고 임대료만 오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주 52시간 시대에 다주택자 규제 맞나?

7월부터 주 52시간 제가 도입되면서 우리 사회가 큰 변화를 맞게 됐습니다. 하루 근무시간이 짧아지는 경우도 있고, 길게 일하는 대신 주4 일제 근무를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앞장서 연차휴가를 쓰면서 휴가도 길게 쓰는 풍토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어진 시간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주말에 지방에도 놀러 가서 돈도 좀 쓰면 지방 경제도 살아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비싼 경비에 짓눌리기 일쑤입니다. 요즘 웬만한 콘도 하룻밤 이용비용은 20만 원대에 달합니다.
바캉스란 표현이 나온 프랑스 사람들은 여름에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씩 휴가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렇게 길게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저마다 교외에 허름한 농가주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 절벽시대에 지방 인구가 많이 줄어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지방에 조그만 농가주택을 가지고 주말마다 가서 돈도 쓰면 지방경제도 활성화될 것입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2주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습니다. 1억 4천만 원짜리 농가주택 하나 갖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결국 해당 농가주택을 파는 소동을 겪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나 사람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감안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아파트 값이 오른다 싶으면 두드려 잡고, 그러다가 시장이 너무 죽었다 하면 또 풀기만 반복하는 '철학 없는 정책'이 너무 답답하기만 합니다.


◆ 정창원 기자는?
=> 현재 사회 1부 데스크.
199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로 부동산 등 경제 분야를 취재하면서 부동산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 이후에는 정치부 취재를 오래 했습니다. 올해로 데스크 6년 차입니다.
조금 더 부강한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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