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권 씨(68)는 아직도 4년 전의 원통함을 잊을 수 없다. 24세의 나이로 6.25 전쟁 때 전사한 형의 묘지가 있던 충남 금산군 진산면의 한 언덕. 추석을 맞아 찾은 그 곳은 이미 봉분이 지름 1m 가량 반구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었고 비석은 거친 숲길 위로 고꾸라져 있었다. '이러다 형님 묘를 영영 못 보겠다'는 생각에 유 씨는 국립현충원으로 형의 묘를 옮기려 했지만 국가보훈처로부터 "직계존비속 유족이 아닌 형제자매에게 국립묘지 안장을 제외한 제사 및 운구 비용은 지원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유 씨는 자비 250만원을 들여 형의 묘를 이장했다. 유 씨는 "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됐는데 훼손된 형님 묘를 옮기는 비용까지 내가 치르려니 억울한 심정이 든다"고 말했다.
유 씨와 같은 억울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국립묘지법 개정에 나선다. 22일 보훈처는 "직계존비속 유족이 없는 전몰군경의 이장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 개정을 검토 중이며 입법예고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아울러 유족이 없는 전몰군경 묘지중 사유지에 위치한 묘지에 대한 실태조사 역시 실시할 예정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인력상황을 고려할 때 실태조사에 어려움이 있어, 향후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해 실태조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말 유 씨가 제기한 고충민원을 받아들인 결과다. 권익위는 지난 7일 '유 씨 형처럼 직계 비속이 없는 전몰군경의 경우 형제·자매 등이 사망하면 연고가 없는 묘로 방치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타인 사유지에 안장된 경우 토지 소유주 변경과 토지가격 상승 등 시대상황 변화로 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며 보훈처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국가유공자법' 상 국가 지원금의 수급권이 있는 유족의 범위는 배우자, 자녀, 부모 등 직계 존비속이다. 유 씨 역시 2001년 수급권자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3년간 혼자 힘으로 형의 묘를 돌봐왔다.
보훈처는 전몰군경의 묘가 위치한 토지가 유가족 소유인지 타인 소유인지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할 예정이다. 보훈처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전몰군경 12만1564명 중 43.4%는 국립묘지가 아닌 개인토지 등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이 6.25 때 젊은 나이로 전사한 장병이며 이들 중 3만3927명(27.9%)은 직계비속이 없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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