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자투리천 하나 없는 옷에 도전한 디자이너
입력 2018-06-01 16:40 
자투리 천을 만들지 않고 옷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000간'.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쓰레기 유발자'.
멋진 옷을 창조하는 패션업계의 아픈 별명중 하나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하루 평균 161.5톤이던 국내 의류폐기물은 2014년 213.9톤으로 32.4%나 증가했다. 의류폐기물의 양은 7만톤에 달하고 불 속에 태워지는 의류 폐기물의 규모만 약 40억원에 달한다.
000간 신윤예 대표. [사진 제공 = 000간]
이런 상황에서 "자투리 천 하나 안 남기고 옷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패션기업을 세운 사람이 있다. 지난 2012년 직접 '000간(공공공간)'을 창업한 신윤예 대표(34)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가 000간의 시즌2"라고 말하는 신 대표를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000간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신 대표가 의류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창업을 결심한 건 지난 2011년 창신동 지역 아동센터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활동하면서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창신동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다"고 해 확인해보니 쓰레기 대부분이 봉제공장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천이었다.
창신동은 소규모 봉제공장 980여 개가 몰려 있는 봉제 골목으로 매일 22톤의 자투리 천이 버려지고 있었다.
이에 신 대표는 원단을 사용하면서도 천을 버리지 않고 옷을 만드는 '제로 웨이스트 패션' 연구를 시작했다.

신 대표는 "자투리 천이 안 생기게 옷을 디자인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원단은 네모지만 사람 몸은 곡선이라 퍼즐 맞추듯이 치밀하게 디자인을 설계해야 남는 쓰레기 없이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 설계보다 더 어려운 게 자금 문제였다. 신 대표는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보니 초기 지원이 필수적이었다"면서 "각종 기업과 지자체들이 시행하는 지원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원을 받아 시드머니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 대표는 회사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한 봉제공장. 창신동에는 2~3인으로 운영되는 봉제공장 980여 개가 밀집해있다.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000간에서 판매중인 '제로 웨이스트 백'. [사진 = 000간 홈페이지 캡쳐]
창업 초기만 해도 연 매출 2000만 원에 불과했던 회사는 착한 사회적 기업으로 소비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초기에 제작한 상품 150개를 모두 팔아치웠다. '카카오 메이커스'와 협업 해 만든 '카카오 프렌즈 망토담요'는 일주일 동안 2000개가 넘는 주문이 들어와 약 35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제 000간은 연 5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지만 신 대표는 13명으로 늘어난 직원을 4명으로 축소했다. 신 대표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현재 000간은 창신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기업에 플랫폼 형성을 돕는 일을 추진 중"이라며 "이를 위해 꼭 필요한 핵심 디자이너 4명만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000간은 올해부터 다른 사회적 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컨설팅에 나서고 있다. 이를 "000간 시즌2"라고 설명한 신 대표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000간 내부 공간.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신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성공하려면 '강력한 핵심 기술'과 '그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이 필요한데 000간에는 폭발적인 성장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그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의 비싼 가격에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게 신 대표의 생각이다.
이어 "000간처럼 작은 회사는 큰 의류회사와 맞붙어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작지만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야 착한 소비에 공감하는 구매자들이 늘어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000간이 각 지역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을 돕고, 도시의 크리에이터들이 더 많이 활동하는 생태계를 만드는데 일조하겠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송승섭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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