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5월 30일 뉴스초점-"그 이름을 떼어 주오"
입력 2018-05-30 20:09  | 수정 2018-05-30 20:42
어제는 영웅, 오늘은 그냥 그 분.

요즘 몇몇 대학에서, 때아닌 과거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과거사 문제'라 일컫기도 애매한데, 학교에 공을 세운 인물을 기리려는 취지로 이름을 앞세워 건물도 짓고, 동상도 만들고 했던 일들이, 이후 다른 평가가 나오면서 골칫거리가 된 거죠.

고려대에 있는 '이명박 라운지'는, 요즘 '그분 라운지'로 불립니다. 지난 달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 한 이후 호칭이 달라진 겁니다.

2003년 당시에도 현역 시장의 이름을 붙이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은 '이명박 라운지'가 됐고, 최근까지 논란이 이어지다가 이름을 뺀 채 '그분 라운지'로 불리고 있는 거죠.

지난해 11월 이화여대에선, 김활란 초대 총장의 친일 행적을 두고 학내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학생들이 동상 앞에 설치한 '친일행적 알림 팻말'을 학교 측이 교내 규정에 반한다며 철거했기 때문입니다.

또 연세대 '김우중 기념관' 역시,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혐의로 수사를 받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해외로 도피한 뒤, 문제가 됐죠.

지난해 영남대에선, 박정희 박근혜 두 사람의 이름을 지우자는 움직임이 거셌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후였죠.


2015년 미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노예제 존치를 옹호했던 제퍼슨 데이비스 전 대통령. 그의 동상을 두고 텍사스대는 학생들의 철거 주장을 받아들였고, 미시시피주 펄리버대에선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을 그대로 존치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인물을 두고도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온 겁니다.

지금의 부끄러운 역사가, 나중에는 또 어떤 재평가를 받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혹독한 지탄을 받는 인물에 대해서도 지금 현재도,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직 역사의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기념하고 동상을 세우는 거에,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건 더하죠.

개인의 이름으로 동상이나 기념관을 설립하는 건, 살아있는 그 인물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후손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며 기억하기 위한 거라는걸, 기념의 진짜 의미를 우리는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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