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현대車 구조개편안 발표이후 시총 6조 증발
입력 2018-05-24 17:43  | 수정 2018-05-24 19:17
최근 2개월 동안 지배구조 개편 논란을 겪은 현대차그룹의 시가총액이 6조원가량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에 따라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며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로 했지만 엘리엇 등 투기 자본의 반대에 부딪혀 개편안이 전격 철회된 것이다. 1%대 '쥐꼬리' 지분율로 경영을 흔든 엘리엇 탓에 현대차그룹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2개월간 손실 폭은 엘리엇의 8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불확실성이란 악재가 생겼지만 중국 사드 악재 해소라는 실적 호재가 생겨 현대차그룹주를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24일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 기준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4인방' 주가는 지난 3월 28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이 나온 당시 주가보다 모두 하락했다. 이 기간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축인 현대모비스는 시총이 무려 2조1902억원 줄었고, 현대글로비스 역시 같은 기간 시총이 1조원 넘게 감소했다.
그룹의 이익 대부분을 책임지는 현대차 시총도 2조5332억원 쪼그라들었다. 이들 4인방의 시총 감소분은 모두 5조9888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시총이 감소한 것은 지배구조 개편이 잠정 중단된 데다 이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차에 최고 25%에 이르는 고율의 관세 부과를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지배구조 개편 핵심은 현대모비스가 AS·모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로 넘기고, 이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주식스왑(교환)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이다. 개편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30.2%를 확보하게 되면서 정 부회장 체제로의 경영권 승계도 굳힐 계획이었다. 이 같은 개편안이 나오자 정부는 환영의 뜻을 즉각 보였다. 개편안이 공개된 당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 요구에 부응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장 반응을 보기도 전에 섣부른 반응을 내놨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후 엘리엇은 곧바로 현대차그룹에 추가적인 개편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면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을 내용으로 하는 자체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때 밝힌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관련 종목 지분율은 1.4%다.
엘리엇은 1%대 지분율로도 손쉽게 현대차그룹과 정부의 뜻을 무력화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을 문제 삼으면서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문제점까지 부각시켰다. 이미 정부가 나서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을 깔아줬기 때문에 엘리엇 주장에는 힘이 실렸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를 비롯해 글래스루이스를 포함한 외국계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자문사까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다. 특히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반대 권고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이곳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고 국민연금은 현대차그룹 주요 주주로 영향력이 크다. 오는 29일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개편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국민연금까지 돌아설 기미가 보이자 현대차그룹이 주총을 취소한 것이다.
이 같은 혼란 속에 현대차그룹 주요 주주들은 모두 손해를 본 것으로 나온다. 개편안 이후 이날까지 2개월 동안 국민연금은 현대차그룹 '4인방'의 시총 감소 탓에 5589억원의 투자 손실을 봤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9.8%)를 비롯해 4인방을 고루 들고 있는 주요 투자자다. 같은 기간 엘리엇의 손실은 국민연금 손실분의 8분의 1 수준인 678억원이다.
현대모비스의 핵심 사업을 받아오기 때문에 개편 수혜주로 꼽혔던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하락은 예상을 벗어났다는 평가다. 이 종목은 오너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51.4%에 달한다. 이 종목 주가가 올라야 오너로서는 지배구조 개편 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오히려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개편안을 내놓기 위해 3년간 총 100개의 지배구조 개편 모델 중 가장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은 모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안을 내놓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 최대 악재는 불확실성이고 현대차 관련주는 지배구조 개편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불확실성만 제거한다면 관련주 주가는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현대모비스 0.71배, 현대차 0.58배, 기아차 0.47배 등으로 모두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대글로비스 PBR는 1.23배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중국 사드 악재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던 이들 종목이 올 상반기까지는 고전하겠지만 올 하반기부터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대모비스는 올해 추정 영업이익이 2조2634억원으로 작년보다 11.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개편안과 함께 제시된 현대모비스의 비전이 뚜렷해 중장기 실적 전망도 밝은 편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미래차 기술력 확보에 집중시켜 독일 보쉬와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또 이 종목은 향후 새 지배구조 개편안이 나오면 수혜주로 부상할 전망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존 개편안은 주주에게 다소 불리했다는 지적이 있어 새로운 개편안은 모비스에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작년 대비 올해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무려 132.6%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올 하반기부터 국내외에서 신차를 내놔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다. 그러나 현대차와 현대글로비스는 작년 대비 올해 나란히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대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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