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엘리엇` 와중에…외인 勢결집 돕는 정부
입력 2018-04-24 17:55  | 수정 2018-04-24 23:42
◆ 공격받는 현대차 ◆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기업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24일 국회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1인 이상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의 추진 방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산업계에선 '정부가 해외 악성 투기 자본의 공격에 국내 기업을 무방비로 내몰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간섭 강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더캐피털그룹 등 일부 외국인들이 이 그룹 계열사 주식을 매집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더캐피털그룹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7.4%, 4.86%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대차에 대한 지분을 지난 10일 기존 7.33%에서 7.4%로 0.07%포인트 높였다.
운용자산이 1700조원에 달하는 더캐피털그룹은 장기 투자 성격(롱텀펀드)으로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만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식을 동시에 보유한 주요 주주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현대차그룹을 압박할 경우 상당한 부담이 될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지만 엘리엇은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고 배당을 크게 늘리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요구 조건을 지난 23일 제시했다. 외국인 지분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외국인은 다음날인 24일 현대차를 204억원 규모로 순매수하며 지분을 늘렸다.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현대차를 1256억원 규모로 사들이고 있다. 같은 기간 현대모비스에 대한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230억원이다. 외국인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48.34%에 달해 오너 등 특수관계인 지분(30.17%)을 압도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에도 외국인(46.44%)이 오너 등 우호 지분(28.24%)에 앞서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실제 진행되려면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돼야 한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의 공세와 외국인 지분 상승에 따라 치열한 표 대결 양상까지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합병신고서를 정정하며 "엘리엇 등이 주주총회에서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 의결권을 결집하는 경우 위임장 경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공시했다. 주주들에게 지배구조 개편 찬반 표 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놓고 1차 경보를 울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오너 입장에서 우호 지분으로 판단됐던 국민연금도 우군으로 분류하기 어렵게 됐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의 2대 주주(9.8%)이지만 최근 다른 상장사 주요 주총에서 '중립 의견'을 냈다.
현대차그룹 말고도 외국인 지분이 높은 기업이 꽤 많은 만큼 대한민국 기업들이 일거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KT&G는 외국인 지분이 52%를 넘고 포스코와 네이버는 각각 57.5%, 59.6%에 달한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등 국내 대표 금융사의 외국인 지분도 70% 안팎을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SK하이닉스(49.7%), 이마트(49.4%), LG생활건강(46.4%) 등도 외국인 보유 지분이 절반에 육박한다.
한국 대표 기업들이 궁지에 몰렸지만 정부의 대응은 느긋하다. 심지어 법무부는 최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1인 이상 분리 선출'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추진 방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학계와 산업계에선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국내 기업이 무방비로 내몰릴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기존 후보마다 한 표씩 주는 것과 달리 선임해야 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외국계 자본이 소수 주주와 함께 의결권을 집중해 원하는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지난 23일 엘리엇이 제시한 요구 내용 중에는 해외 기업 운영 경험이 있는 3명의 독립적 사외이사 추가 선임 요구가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엘리엇 등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출자구조 재편에 대한 취지와 당위성을 설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개편안이 현대차그룹주를 쥐고 있는 주주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계속 설득해 나간다는 '정공법'을 꺼내든 셈이다.
한편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제시하면서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특히 현대차의 연간 순이익(작년 4조5464억원)은 현대차그룹 중에선 독보적으로 1위이기 때문에 배당 확대 가능성도 가장 높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외국인 순매수 덕분에 전날보다 1.9% 상승했다. 현대모비스 주가는 0.6% 상승했다.
[문일호 기자 / 김정환 기자 / 박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