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 7월 각각 퇴임한 경찰 치안감 출신 A씨와 B씨는 경찰청 산하 도로교통공단에 재취업하겠다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재취업 승인 신청서를 냈다. 비록 자신들이 속했던 경찰 조직이 도로교통을 관장하는 만큼 고위 공직자 재취업 제한 기준인 '업무 연관성'에는 걸리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해달라며 '취업승인' 신청서를 낸 것이다. 공직자윤리위는 이들의 전문성, 재취업 후에 업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등 법상 예외사유를 근거로 이들의 취업을 승인해줬다. 윤종기 전 인천경찰청장이 올해 2월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에 선임되는 등 도로교통공단이 역대로 '경피아'(경찰+마피아)에 의해 장악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공직자윤리위가 이번에도 또 경찰 고위간부의 도로교통공단 상임이사직 재취업을 승인해준 것이다.
5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요청 건 86건 중 78건(90%)이 취업가능 혹은 취업승인 판정을 받았다. 오직 10건에 대해서만 공직자윤리위는 취업제한 혹은 불승인 통보를 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이 재취업 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사전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심사의 종류는 '취업가능/제한' 혹은 '취업승인/불승인' 등 2가지가 있는데, 취업가능/제한의 기준은 '업무연관성'으로,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된 업무와 연관이 없어야 한다. 다만 직급별로 차이를 둬, 2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자신이 속했던 '부처'에서 하는 모든 업무와 연관성이 없어야 하는 반면, 3급 이하 공무원은 자신이 속했던 '과' 업무와 관련이 없기만 하면 된다.
상당수 고위 공무원들이 자신이 속했던 '부처'를 기준으로 하면 재취업 기관과 '업무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인 '취업승인/불승인' 절차를 밟는다. 업무 연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문성이 있고 추후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다면 취업승인을 해줘야 한다는 예외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예외조항을 이용해, 김영기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1차 관문인 '취업가능/제한' 심사에선 취업제한을 받았지만, 지난달 심사에선 '전문성이 있다'며 취업승인을 받아 금융보안원 원장으로 선임될 전망이다. 신동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판결문도 개인정보를 특정하지 않고 공개되는데 퇴직공무원 재취업 심사는 공개가 전혀 안돼 기준을 알 길이 없다"며 "심사 위원들 명단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고위 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온정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참여연대에 따르면, 2011~2017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퇴직공직자 79명 중 74명이 '취업가능' 판정을 받았고, 취업제한은 오직 5명 뿐이었다.
인사혁신처측은 "민간 위원 7명을 포함해 11명의 전문가들이 개별 건대로 취업가능 및 취업승인 심사를 하고 있다"며 "개별 안건별로 주심과 부심, 그리고 각 위원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구조다. 대법관, 변호사 출신 전문가들이 공정하게 심사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달만 봐도, 환경부 4급 C씨는 한국상하수도협회 상하수도인증원장 취업 도전 건,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공무원 D씨의 한국철강협회 부회장직 취업 도전 건 등이 모두 받아들여져 국민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 간사는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심사 기준도 보다 구체적으로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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