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정문. 졸업생이라며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사본을 발급받으러 왔다고 밝히자 학교 직원은 인적사항을 기록하라며 명부를 건넸다.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방문목적 등을 작성하니 신분증과 대조해본 뒤 곧바로 일일 방문증을 발급해 줬다. 방문증을 들고 교실로 향하는 동안 그 누구도 기자의 움직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지난 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인질극으로 초등학교 학생 안전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외부인이 마음만 먹으면 출입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학교 사전 방문 예약제 도입 등 외부인 신원확인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외부인들은 하루에도 수십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학교와 전혀 무관한 사람도 많은데 일일이 신원확인을 거쳐 문제 소지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학교가 팩스민원 처리도 담당하기 때문에 부산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증명서류를 떼겠다며 서울 소재 초등학교를 찾는 경우도 있다"며 "따라서 해당 학교 졸업생이 아니라 학교와 전혀 무관한 사람도 적당한 구실을 대고 정문을 통과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마련한 '학생보호 및 학교안전 표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모든 초·중·고교는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출입문을 폐쇄해야 한다. 하지만 민원인이 해당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인근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팩스민원 신청이 가능하도록 한 교육부 조치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신원확인 절차로 인해 '안전불감증'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 2010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여학생을 납치·성폭행한 '김수철 사건' 이후 서울시는 '학교 보안관' 제도를 도입해 외부인 출입 통제를 강화했다. 학교 보안관들은 학생 보호라는 업무 특성상 유사시 물리력 행사가 불가피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적극적인 대처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또 학교당 1~2명에 그치는 인력 부족 문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편 인질강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양 모씨(25)는 '학생을 잡고 투쟁하라'는 환청을 듣고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서울 방배경찰서는 양씨가 "'학교로 들어가서 학생을 잡아 세상과 투쟁하라. 스스로 무장하라'는 환청을 듣고 교무실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양씨에 대해 인질강요·특수건조물침입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양연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