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덕혜옹주 한 서린 그곳은 매화향취만 그득
입력 2018-04-02 18:34  | 수정 2018-04-02 18:43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왼쪽)와 덕혜옹주 [사진출처=문화재청]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1912~1989)가 남긴 낙서다. 열세 살 때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 덕혜옹주는 196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덕혜옹주는 오빠 영친왕(이은)의 부인이었던 이방자 여사가 살고있는 창덕궁 낙선재로 들어갔다. 망국의 한을 간직한 두 여인은 1989년열흘 간격으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낙선재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낙선재 전경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미세먼지가 걷힌 지난달 30일 오전 창덕궁 낙선재를 찾았다. 평소에는 일반인이 볼수 없는 곳이지만 4월 28일까지 딱 한달만 공개된다기에 서둘러 예약을 했다. 낙선재 관람이 시작되는 길목인 창덕궁은 이날 소풍을 온 중학생들과 고궁의 정취를 즐기는 외국인,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노부부까지 봄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낙선재 일대 배치도 [그래픽=이지연 인턴기자]
낙선재 관람은 창덕궁 정문 돈화문에서 시작한다. 임금님이 다녔던 어도를 지나 창경궁과 인접한 낙선재로 이동하는 코스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 재위시절인 1847년 건립됐다. 조선왕조에서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8살에 즉위한 헌종은 23살에 후세 없이 요절했다. 정치 개혁과 왕권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낙선재를 건립한 헌종은 할머니 순원왕후를 위한 수강재를 중수하고, 사랑했던 후궁 경빈 김 씨를 위해 석복헌을 세웠다. 현재 낙선재와 수강재, 석복헌을 통칭해 '낙선재 일대'라고 부른다.
후원에서 내려다 본 낙선재와 낙선재 현판
안내를 맡은 김민정 문화해설사는 낙선재 현판부터 소개했다. 일명 '추사 덕후'였다는 헌종은 추사 학파 청나라 문인 섭지선(葉志詵) 글씨로 현판을 달았다. 그뿐 만 아니라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을 낙선재로 자주 들여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수렴청정이 끝난후 본격적인 왕권 강화에 나섰던 21살 헌종의 사랑채이자 휴식공간인 셈이다.
낙선재 후원의 상량정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낙선재 외관은 일반 궁궐과 다르다. 소박하다 못해 단조롭기까지 하다. 청·적·황·백·흑색의 다섯가지 색을 기본으로 목조 건축물에 무늬와 그림을 새겨넣는 단청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화려하지 않지만 주변 자연경관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정제의 미학이랄까.
낙선재 오른편에는 경빈 김씨 처소 석복헌(錫福軒)이 있다. 석복헌은 '복을 내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세자 탄생을 기대하는 헌종의 마음이 녹아있다. 곳곳에는 호리병·포도 문양이 보이는데 이 또한 출산을 염원하는 의미다. 석복헌은 수강재와 다르게 대문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경빈 김 씨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라는게 김 해설사의 설명이다.
매화가 움튼 낙선재 후원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특별 관람에서만 들어가 볼 수 있는 후원에는 매화 꽃봉오리가 움트고 있었다. 매화의 향취에 취할 즈음 눈을 떠보니 상량전과 승화루 앞으로는 남산 타워가 멀리 보였고 한정당과 취운정 뒤로는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이 감싸고 있었다. 봄날 산책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날 20명의 관람객들은 건물을 둘러본후 자유 관람 시간을 가졌는데 연인·부부·친구 너나 할 거 없이 낙선재 후원 풍광을 즐겼다. 특히 인기 있는 사진 촬영 장소는 다산의 상징 포도와 연꽃이 그려진 꽃담이었다.
문화유산해설사 준비생 이지선 씨(32)는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의 거처로만 알았던던 낙선재가 건물마다 사연이 깃들여있는데다 매화 절경도 아름다워 혼자 보기에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후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낙선재 특별관람은 4월 28일까지 매주 목·금·토 오전 10시 30분 1회씩 진행되며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선착순으로 예매할 수 있다. 1회 관람 인원은 20명으로 제한되고 관람 시간은 약 1시간이다.
일상이 따분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낙선재 후원에서 봄바람을 맞아보는 게 어떨까.
[디지털뉴스국 신경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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