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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44경기` 정말 부담스러운 수준인가?
입력 2018-03-28 14:20  | 수정 2018-03-29 09:08
시즌 144경기가 너무 많다는 목소리가 프로야구 현장에서 들려오고 있다. 24일 개막전에서 관중으로 꽉 들어찬 잠실야구장 전경. 사진=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은 지난 25일 잠실구장 삼성전을 앞두고 취재진에게 프로야구 정규시즌 스케줄을 단축해야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감독은 우리 팀에서 최근 2년 연속 풀타임(규정이닝)을 소화한 선발 투수가 장원준, 유희관 밖에 없다. 젊은 투수가 일찍 나가 떨어진다”며 144경기가 너무 많다. 야구 발전을 떨어 뜨린다”고 말했다. 이어 120경기가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정말 우리나라 프로야구 체제나 수준에서 144경기는 너무 많은 것일까?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원년인 1982년에 팀당 80경기였다. 이듬해 100경기가 된 뒤 110경기(1985년), 108경기(1986년), 120경기(1989년), 126경기(1991년), 132경기(1999년), 133경기(2000년), 126경기(2005년), 133경기(2009년)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10구단 kt가 1군에 합류한 2015년부터 지금의 144경기가 됐다.
국내 아마추어 선수 풀은 미국이나 일본, 심지어 대만에 비해서도 좁다. 제한된 선수 자원에서 팀과 경기 수가 늘어나면 경기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 점에서 김 감독의 우려에는 경청할 지점이 있다. 김 감독 개인의 의견만은 아니다. 한 야구계 중진은 많은 감독들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이 ‘총대를 메고 어려운 이야기를 한 셈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산업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720경기 전체 입장수입은 898억 원이었다. 경기당 1억2476만원이다. 김 감독의 주장대로 팀당 120경기를 치르면 리그 전체에서 120경기가 줄어든다. 지난해 평균 입장수입을 적용하면 손실액은 150억 원이다.
올해 신인과 외국인을 제외한 프로야구 등록선수 513명의 전체 연봉은 771억 원. 120경기 스케줄에선 입장 수입 감소만으로 선수단 총 연봉의 19%가 사라지는 셈이다. 프로야구단 매출에서 입장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20% 정도에 그친다. 영업일수가 줄어들면 중계권, 광고, 상품 판매 등 다른 수입 역시 감소한다.
수입 감소분은 결국 모기업 지원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후 스포츠에 대한 지출을 줄이는 추세다. 2016년 프로야구단 재무제표를 분석하면 어떤 구단도 총매출에서 특수관계자매출을 뺀 자체매출 비율이 60%를 넘어가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매출이 줄어들면 고용과 연봉 수준 역시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정규시즌 일정을 줄이자”는 주장이 진지하게 검토되기 위해서는 매출감소에 대한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많은 야구 관계자들은 최근 몇 시즌 동안 경기의 질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특히 투수 쪽이 그렇다. 하지만 경기 질의 문제는 경기 수보다는 팀 수가 늘어난 이유가 더 크다. 8개 구단 126경기 스케줄에서 전체 1군 선수 수는 25명 출장 엔트리 기준 200명이었다. 지금은 250명이다. 1군 선수들이 평균 18경기를 더 뛰는 것과 8개 구단 시절이라면 2군에 있을 선수 50명이 1군에 뛰는 것 중 어느 쪽이 ‘경기 질에 영향을 더 미칠까.
긴 페넌트레이스는 물론 부담스럽다. 하지만 과거보다 나빠진 조건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합리적인 운영으로 오히려 다른 팀에 비해 앞서나갈 수 있는 계기도 된다. 프로야구에 이미 실례가 있다. 2013년 1군에 데뷔한 NC는 이듬해부터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이 됐다. 신생팀은 기존 구단에서 더 악조건에서 뛴다. 선수는 모자라고, 긴 일정에 대한 부담은 다른 팀보다 더 크다. 하지만 창의적인 구단 운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강팀 반열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김태형 감독의 두산 역시 현명한 구단 운영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긴 페넌트레이스가 선수 피로와 부상에 미치는 영향은 세심하게 연구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프로야구 역사를 볼 때 선수, 특히 투수 혹사는 페넌트레이스 일정이 짧을수록 더 심했다. 많은 감독들은 성적을 위해 혹사를 정당화하곤 했다.
하지만 페넌트레이스가 길어지자 이런 방식이 팀의 성적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최고가 아닌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왔다. 구단들이 선수단 규모를 확대한 시기와 맞물린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복귀해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도 144경기 일정에서 과거에 못지않게 투수들을 혹사시켰기 때문이다. 선수 혹사로 끌어올려진 ‘경기 질이라면 차라리 떨어뜨리는 게 옳다.
많은 국내 감독은 KBO리그 선수층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얇다”고 말한다. 긴 일정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리그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감독은 선수가 없다”고 말한다. KBO리그 기준으론 무시무시해 보이는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있는 이유는 결국 메이저리그 감독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KBO리그에 비해 선수단 운영에서 구단과 감독의 재량 폭이 훨씬 좁다. KBO리그 선수 정원은 65명이지만 메이저리그는 40명 뿐이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훨씬 많다. 하지만 40명 로스터 정원 제한 때문에 기존 선수를 방출해야만 유망주를 콜업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수노조의 힘이 막강해 트레이드, 심지어 마이너리그 강등도 뜻대로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144경기 일정도 그렇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장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의견을 내는 건 당연하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 KBO의 많은 결정은 현장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뤄진다.
이해 관계가 상충되는 문제에서도 그렇다. 경기일정 연장을 노사 관계로 해석하면 같은 급여 조건에서 노동강도가 현저하게 높아지는 셈이다. 메이저리그에서라면 경기 일정은 노사 합의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정규시즌 일정은 KBO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사전에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이 생략되니 직제상 상급자인 구단 사장이 KBO 이사회에서 한 결정에 감독들이 반발하는 우스운 모양새가 나온다. KBO리그의 고질적인 문제다. didofidomk@naver.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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