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미투' 운동 이후 MT·워크숍서 술 사라졌다
입력 2018-03-25 08:50  | 수정 2018-04-01 09:05

"과 MT 때마다 신입생 남자들을 여장시켜 1등을 가리는 장기자랑을 했어요. 선배들은 '전통'이라지만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한 대학교 대나무숲)

"월말에 워크숍 하는데 외부 강연 세션에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주제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디서, 어떤 강사를 초빙하는 게 좋을까요?" (트위터 아이디 'win****')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며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감지됩니다.

특히 개강 한 달을 맞은 대학가는 봄 MT를 준비하며 술자리에서 발생하기 쉬운 성희롱·성추행 등 성범죄를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는 2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단과대 별로 MT에서 성폭력 문제가 없도록 주의하자는 내용의 자치 규약을 만드는 곳도 있다"며 "술만 마시는 MT가 아닌 뭔가 프로그램이 있는 MT로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는 이모(23)씨는 "예전에는 MT에서 술을 마시고 야한 농담을 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확실히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생겼다"며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누군가 여성 비하적인 말을 내뱉으면 제지하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미투 운동 이후 학생들이 나서 MT에서 술은 자제하고 성희롱·성폭력을 하지 말자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 팸플릿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며 "술 마시고 실수할 수 있다는 식의 관대했던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직장 워크숍 문화도 달라지는 추세입니다.

중견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32)씨는 최근 1박 2일로 진행된 회사 워크숍에서 사륜오토바이(ATV) 체험 등 색다른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술은 1인당 맥주 1캔 정도만 준비됐고 누군가 술을 더 찾는 사람이 있으면 '요즘 분위기 모르느냐'고 주변에서 핀잔을 주기도 했다"며 "술자리에서 꼭 나오는 음담패설이나 성희롱성 발언도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봄철 단체 손님 특수를 기대했던 일부 숙박업계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대학생 MT나 직장 워크숍이 이어지지만 최근 미투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 탓에 예약 자체가 많이 줄어든 탓입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A씨는 "4월 초까지가 보통 MT 대목인데 이번 주에는 한 팀밖에 예약이 없다"면서 "아마도 미투 운동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A씨는 "과거에는 별다른 활동 없이 술만 마시는 게 MT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MT에서 래프팅이나 서바이벌 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변화에 대해 "최근의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는 젠더·인권 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집단적 경험을 하고 있다"면서 "사회가 한 발짝 더 발전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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