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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원작 겉핥은 구구절절 스릴러 ‘7년의 밤’
입력 2018-03-22 08:01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가장 어려운 점은 원작이었다. 뛰어난 문학성을 어떻게 영화 속에 녹여내느냐가 가장 큰 숙제. 원작의 기조는 ‘성악설인데 나는 악에도 이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악을 다른 시각으로, 영화만의 색깔로 새롭게 그리고자 했다. -추창민 감독”
결국 감독은 숙제를 풀지 못한 듯하다. 뛰어난 문학성도, 스릴러 적 긴장감도, 영화만의 차별화된 매력도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원작 소설을 다시 보고 싶은 욕구만 더 커졌다.
‘7년의 밤은 한 순간의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의 7년 전의 진실과 그 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영화화가 기대되는 소설 1위로 꼽힌 정유정 작가의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만큼 영화화 소식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바, 결과적으로 높은 기대치는 오히려 독이 됐다.
우발적 살인으로 인해 파멸해가는 한 인간과 선악의 교묘한 경계라는 무거운 소재를 매력적으로 풀어낸 원작과 달리 영화는 작위적이고 단조로운 전개와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정으로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난해하지만 묵직한 깊이감과 서스펜스, 날카롭고도 섬세한 통찰력과 탄탄했던 서사는 비효율적으로 압축돼 병든 부성애와 그 어떤 것으로도 미화가 불가한 불편한 폭력만 남았을 뿐이다.
두 병든 부성 사이에서 가장 애틋하고도 설득력을 가진 서원의 비중을 줄이고, 두 아빠의 치열한 폭주와 이들의 사연에 초점을 맞췄지만 썩 효율적이진 못하다. 사이코패스였던 오영제에게 나름대로의 어설픈 사연을 부여하면서 스릴러적 공포는 반감되고, 최현수의 과거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구구절절하게 늘어나 처절한 몰락에도 별다른 동정심이 느껴지질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도,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모든 걸 걸고 지켜내려고 했던 ‘무엇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진짜 악인은 누구인지, 악인을 탄생시킨 무언가에 대한 물음도, 정당화할 수 없는 살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무엇에 대한 깊이감도 떨어진다. 배우들의 구멍 없는 열연에도 저마다의 캐릭터가 별다른 생명력을 보여주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장동건의 연기 변신과 류승룡의 섬세한 감정 연기, 광기 어린 두 남자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존재감을 안정적으로 발현해내는 송새벽, 세 사람의 조합은 기대 이상이다. 그렇기에 아쉬움 또한 더 크다.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와 거대한 스케일, 섬세하고 강렬한 미장센 역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이 역시 근원적인 한계점으로 인해 금세 힘을 잃고 만다.
치열한 두 남자의 사연이, 7년전 밤의 진실이 벗겨졌을 때에도 놀라운 반전이란 건 사실상 없다. 이들의 악행의 이면을 납득할 만한 무엇이나 먹먹한 여운도, 관객의 가슴을 파고드는 고뇌거리도 딱히 없다. 그저 삐뚤어진 부성과 변명, 폭력과 집착만이 남아 있을 뿐,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다시 원작을 정독하는 편이 낫다. 3월 28일 개봉.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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