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나 싶더니 꽃샘추위가 슬그머니 찾아든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3가 돈의동 갈매기살 골목. 종로3가역 6번출구로 나와 3분정도 걸으니 도착한 갈매기살 골목은 어둠이 채 내리기 전인데도 가게마다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종로 1~4가 일대에 걸쳐있는 피맛골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80년대 골목길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90년 대 초 무렵 형성된 갈매기살 골목은 40~50대 직장인 고객이 많지만 최근 익선동 한옥이 뜨면서 20·30대까지 찾아오는, 그야말로 세대가 화합하는 맛집 골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초입에 바로 보이는 '광주집'을 시작으로 총 11개 점포가 마치 삼각주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갈매기살 골목의 중심 '광주집'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이곳은 양념하지 않은 갈매기살이 주메뉴이며 신선한 삼겹살·항정살도 많이 찾는다. 주인들이 직접 담가 아삭히 익은 갓김치는 단골을 부르는 효자 밑반찬이다.'통돼지집' 박진숙 사장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상인들이 일제히 원조라고 꼽은 가게는 '통돼지집'이다. 통돼지집 사장 박진숙 씨(63)는 1991년 남편이 운영하던 한 칸(약 5평)짜리 "세탁소를 정리하고 돼지고기를 팔기 시작했다"라고 귀뜸했다.장사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박 사장은 "딱 한 칸에서 시작해서 지금 총 4칸(약 22평)이에요. 그거 한평씩 늘릴 때 제일 행복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갈매기살 골목은 가족처럼 지내요. 야유회도 자주 가고 친목계도 꾸준히 하고 있죠. 고기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손님들한테도 진짜 잘합니다. 신선한 고기 가져오는 것도 우리 골목 사람들이 전문가예요(웃음)"라고 갈매기살 골목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고창집' 노영준 사장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2대째 고창집을 운영하는 노영준 씨(37)가 갈매기살을 손질하면서 "하루에 갈매기살 40kg 한정 판매하고 있는데 익선동이 확 뜬 후에 유동인구가 늘어 다 파는 날이 많아졌다"라며 " 주중에는 단골들이 자주 오고 주말에는 SNS나 블로그 보고 찾아온다"라고 말했다.'서대포집' 이선희 사장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을지로 입구역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하다 5년 전 돈의동으로 왔다는 서대포집 이선희(58) 사장은 갈매기살 골목 막내다. "우리 집은 후발 주자라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간장 깻잎지랑 막창"이라며 " 단골들이 이 반찬 먹으러 온다고 할 정도"라며 활짝 웃었다갈매기살 골목 안쪽 모습 [사진=신경희 인턴기자]
경기도 남양주에서 동창 모임을 위해 갈매기살 골목을 찾았다는 조용우 씨(43)는 "직장이 이 근처라 자주 왔는데 예전에는 아저씨 손님들만 있었는데 요즘에는 대학생 친구들도 많이 보인다"라며 "여기 갈매기살이 다른 곳보다 신선하고 한옥에 둘러싸여 있어 분위기도 정겹디"라고 강조했다 '저기압일 땐 반드시 고기 앞으로'라는 말이 있다. 지친 일상에 갓 구운 고기는 위로와 휴식인 셈이다. 고관대작의 말을 피해 피맛길로 숨어들었던 조선 시대 백성과 퇴근 후 갈매기살 골목에 들어선 직장인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디지털뉴스국 신경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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