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30년 향수 외길, 매일 100가지 향수를 뿌리는 남자의 정체는
입력 2018-03-09 13:39 
김유성 씨이오인터내셔널 대표

30년 가까이 국내 향수시장을 지켜오며 '향수장이'를 자처하는 이가 있다. 매년 프랑스나 이탈리아 향수의 고장을 수소문하며 새로운 향(香)을 찾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며 늘 새로운 향기로 소비자 후각을 사로잡는 국내 최대 향수 수입업체 김유성 씨이오인터내셔널 대표(사진·65)가 그 주인공이다. 화려한 포장용기가 아니라 본연의 향으로 승부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김 대표를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씨이오인터내셔널 본사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사치품으로 생각하던 과거와 달리 향수도 패션의 일부분이 됐다"면서 "까다로운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잘 팔리는 제품에 안주하기보다는 신선한 제품을 꾸준히 찾아 그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열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가지 향을 맡고 직접 손과 팔목에 뿌리고 시향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김 대표는 한 손바닥과 팔목에만 100가지 향수를 시향할 수 있다며 자랑스럽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스스로 '시향지'가 돼버린 지 오래라던 그의 주변은 갖가지 향수 냄새가 어우러져 묘한 향취를 뿜고 있었다.
그는 "향을 확인할 때 시향지를 사용하다 보면 진정한 제품의 가치를 느낄 수 없다"면서 "사람의 체취에 녹아들면서 어떤 향으로 변할지, 그게 나와 맞을 지를 찾는 것이 첫번째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화장품 업체들도 제품 개발·출시에 사활을 걸면서 '향수 격전지'가 돼버린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 후각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적인 향'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가 '향수'를 처음 만난 건 1982년. 국내에서 향수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 때다. 당시 아모레퍼시픽 신제품개발부서에서 근무하면서 향수 제품 개발 임무를 맡았을 때 막막함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그는 "향수에 대한 국내 소비자 인식을 알기위해 서울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설문조사를 돌리며 향수에 관해 묻기만 해도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볼 때였다"면서 "'향수는 냄새가 독하고 비싼 사치품, 특히 특정 직업군의 사람들만 사용한다'는 부정적 시선이 강할 때"라고 회고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조사 결과 300명 중 향수를 사용하는 사람은 10명에 불과했다. 주변에서는 "국내에서 향수 팔기는 '아프리카에서 신발팔기'나 '북극에서 냉장고 파는 것'이랑 똑같다"면서 만류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국내 향수시장에 대해 확신이 생겼다. 그는 "당시에는 경제적으로도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였지만 경제가 살아나고 해외 여행 등 외국과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문화·패션 수준이 올라가면서 파리, 뉴욕, 이탈리아에서도 향수 시장이 급성장했던 사례를 보며 국내에서도 향수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는 오히려 제품을 쓰는 것이 익숙한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소비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려는 트렌드와 '작은 사치' 유행이 맞물리면서 국내 향수 시장은 매년 성장세다. 그 가운데는 국내 최다 향수 브랜드를 보유한 씨이오인터내셔널이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향수 가능성을 확인하고 지난 1995년 유통회사 씨이오인터내셔널을 설립한 김 대표는 이때부터 매년 해외를 돌고 바이어들과 만나며 수입 향수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향수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지난 20년 동안 김 대표의 손을 거쳐 프라다, 발렌티노, 존바바토스, 마크제이콥스, 다비도프, 쥬시꾸뛰르, 에트로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향수가 국내에 소개됐다.
씨이오인터내셔널이 전세계 처음으로 수입유통하는 프랑스의 니치 향수 브랜드 '프라고나르' 잠실 롯데월드몰 플래그십 매장
신규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도입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87년 전통을 가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천연 수제비누 브랜드 랑팔라투르와 니치 프랑스 향수 브랜드 프라고나르 등을 공식 인수하면서 새로운 향수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프라고나르는 그동안 고급 향수는 꼭 비싸야 한다는 편견을 깬 제품이다. 프랑스의 향수 도시 그라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향수 제조사지만 가격대가 10만원 이하 선으로 합리적 가격대에 향수 본연의 가치에 주력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김 대표가 프랑스 본사에 몇 번이고 러브콜을 보낸 끝에 전세계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해외 판매를 하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향수 정착에 주력했던 김 대표는 앞으로의 20~30년을 준비하기 위해 '유통망 재정비'라는 칼을 빼들었다.
그는 " "국내 향수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백화점과 대리점, 드럭스토어나 온라인몰 등에서 제품 판매가 혼재되며 가격 경쟁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각 유통 채널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 전략이 없으면 향수시장 '그레이마켓'(grey market, 가격이 공정되어 있는 상품을 공정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매매하는 위법적이면서 합법적인 면도 있는 시장)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늘 새로운 제품 영역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데려오는 것이 우선 과제며 이와 함께 비즈니스 전략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매년 상·하반기 꾸준히 신제품을 도입함은 물론 기존에 무분별하게 소비자들에게 접근했던 판매전략을 수정하고 유통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지난해에 이어 기업 매출과 영업이익이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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