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신탁업이 독과점?…"추가설립땐 중소社만 죽어나"
입력 2018-03-05 17:09  | 수정 2018-03-05 19:44
◆ 위기의 부동산신탁사 ◆
금융당국이 부동산신탁업 신규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신탁사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현 정부가 쏟아낸 각종 부동산 규제 탓에 신탁업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여기에 신규 업체의 추가 진입까지 앞두고 있어서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2018년 업무계획에 부동산신탁사 추가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부동산신탁 업계가 경쟁이 제한됨에 따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4%에 달하는 등 과도한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부동산신탁사들은 2017년 상반기에 순이익 2425억원을 기록해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고 영업실적을 시현한 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동산신탁업이 일종의 독과점 체계를 이루고 있어서 이익률이 높고 특혜의 소지가 있다"며 "이제는 빗장을 열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금융당국의 인식과 많이 다르다는 게 신탁업계의 주장이다. 국내 부동산신탁산업은 2017년 기준으로 총 1조1119억원 규모의 시장을 차입형과 비차입형이 양분하는 구조다. 자기자본을 투입해 사업비를 미리 내주는 차입형(5868억원 규모)은 사실상 디벨로퍼의 영역으로 한국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 등 대형사만 할 수 있는 시장이다. 최근 부동산신탁 업계 호황은 차입형 부동산신탁 영업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5251억원 규모의 담보·관리·처분·분양관리 등 비차입형 시장을 놓고 중소 신탁사 9개가 경쟁하고 있다. 그마저도 책임준공 확약이라는 신탁사의 보증 상품(804억원)을 제외한 순수 중소 신탁사 경쟁시장은 4447억원 규모다.

자기자본을 투입해 수익을 창출하는 차입형과 달리 비차입형은 인적 자원을 통해 용역을 제공하고 수수료 수익을 얻는다. 사업 리스크가 낮은 대신 경쟁이 심해 수주 변동성이 비교적 높고 수주 감소가 곧바로 수익성 저하로 이어진다. 비차입형 비중이 높은 부동산신탁사는 영업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아 수입이 줄면 수익성이 더욱 큰 폭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만약 신규 기업의 진입이 허용되면 이들은 사업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비차입형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비차입형 사업을 주로 영위해온 중소 신탁업체들부터 타격을 받게 된다. 사회 양극화를 줄이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배치되는 결과다. 중소 신탁사가 퇴출되면 이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긴 수많은 수분양자가 피해를 입는다.
부동산신탁업의 ROE가 24%까지 오른 것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다. 최근 신탁업계의 수익이 증가한 것은 주택시장의 단기 호황에 의한 차입형 토지신탁 수주가 급증한 덕분이기 때문에 분양경기가 하락할 경우 수익성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출 규제 등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 지방 주택시장 미분양 증가로 주택시장 불확실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부동산신탁사의 높은 수익률은 5% 내외의 높은 수수료 구조를 갖고 있는 차입형 개발신탁사업 비중이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입형 신탁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무위험 수익을 얻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신탁업체가 자기자본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수익을 내는 '고위험-고수익'형 사업구조다.
정효섭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차입형 토지신탁은 성장과 수익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줬지만 그 대가로 부동산신탁사들이 더 많은 리스크를 지게 했다"며 "사업장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면서 재무레버리지가 확대됐고 대손위험과 유동성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 대형 금융사가 새로 부동산신탁업계에 진입할 경우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어 고객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거대자본을 앞세워 신탁을 하나의 끼워 팔기 상품으로 활용하면 순식간에 부동산신탁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담합 구조가 형성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신탁사업은 그 특성상 다수의 이해당사자와 연관돼 있다 보니 현재 각 부동산신탁사들은 평균 128건의 소송에 휘말려 있다. 만약 분양시장의 침체로 손해를 입는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면 소송 건수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윤성국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신탁사의 귀책으로 최종 판결이 내려질 경우 신탁사 손익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 은행과 증권사는 부동산 개발에 대한 전문성이 기존 부동산신탁업체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사업성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다. 무엇보다 금융 대기업 입장에서 부동산신탁 시장이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기대하는 일종의 '메기 효과'를 신규 업체 진입 허용을 통해 얻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금융당국이 부동산신탁 업계의 신규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부동산 업계에서는 특정 금융사를 밀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표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증권회사가 부동산신탁사 인가 취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자본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ROE는 업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기 때문에 원래 금융권 인허가는 단순히 현재 ROE 수준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며 "시장 전망과 업계 실태 등을 면밀히 분석해 추가 인가 여부와 기존 업계의 대비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신탁 : 소유자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맡기면 신탁회사가 소유자 의견에다 자신들의 자금과 전문지식을 결합해 신탁재산을 효과적으로 개발·관리하고 그 이익을 돌려주는 제도다. 일반 금융사가 돈(금전)을 신탁받아 이를 운용한 뒤 수익을 배당하는 금전신탁과 동일한 개념이지만 신탁 대상이 금전이 아닌 부동산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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