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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가 `반대`하는데…안전진단 강화 밀어붙이는 정부
입력 2018-03-02 15:56  | 수정 2018-03-02 19:35
극단 치닫는 재건축 규제 갈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주말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안전진단 규제 강화 결정이 사유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전자공청회에서도 규제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지만 국토교통부는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특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건축 단지들은 법 시행 전 안전진단 용역계약이 가능한 안전진단 공기관을 찾아가고 있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계약을 거부하면서 주민들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2일 정부 국민신문고에 따르면 오전 9시 현재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일부개정 고시안 행정예고' 전자공청회 게시판에는 안전진단 강화에 대한 찬성 의견 22건, 반대 의견 1683건이 올라왔다. 반대 의견 비율이 98.7%에 달한다. 행정절차법 제39조의2(공청회 및 전자공청회 결과의 반영)에 따르면 행정청은 '전자공청회 등을 통하여 제시된 사실 및 의견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가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법 시행 시기를 조절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아 보인다. 되레 규제 회피 재건축 단지를 막기 위해 정책 집행에 가속도를 내는 중이다. 국토부는 지난 20일 발표한 안전진단 강화와 관련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시행령'을 오는 6일 관보에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해당 법령은 공공기관이 정밀안전진단 이전 단계인 예비안전진단 조사 단계부터 참여해 검토하는 내용이다. 입법예고 기간은 9일이다. 통상 20일 이상 걸리는 예고기간을 절반 이하로 대폭 줄인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3월 16일 이후 1~2주 법제처 최종 심사를 받으면 이르면 3월 마지막 주 늦어도 4월 첫 주 정도엔 법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토부는 이와 별도로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구조안전성 비중을 현행 20%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안전진단 기준 일부개정 고시안'을 지난달 21일 국토부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2일부로 행정예고를 마쳤다.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은 늦어도 다음주 중 곧바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민간 설계사무소 등과 정밀안전진단 용역 계약을 법 시행 전 체결해야 한다. 재건축 단지들이 규제 회피를 위해 속도를 내는 만큼 정부도 빠른 법 시행으로 '봉쇄'에 나선 셈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건축 단지들은 공공기관들과 수의계약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이마저 막혔다.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 아파트 재건축 추진 준비위원회 측에 따르면 최근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한국시설안전공단을 찾아가 '안전진단' 계약을 요청했다. 정부 계약 관련 법규상 시설안전공단이나 한국건설기술원은 공공기관인 만큼 입찰을 거쳐야 하는 민간 안전진단 업체 용역과 달리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입찰 공고 진행과 서류 접수 기간 등에 소요되는 약 20일의 기간을 절약할 수 있어 법 적용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기관들은 재건축 단지들과 용역 계약을 거부하고 있다. 시설안전공단 측은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기준 세부 내용도 고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적용을 피해갈 수 있도록 출구를 주는 용역을 정부 산하기관이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해명했다. 결국 정부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업무를 접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안전진단 공기관인 건설기술원도 지난 20일 이후 재건축 단지들의 안전진단 계약 문의와 요청이 들어오지만 전혀 접수하지 않고 있다.
3일 주말 대규모 집회에 나서는 재건축 단지 대부분은 양천구·노원구·강동구·마포구 등 비강남권이다. 집회 준비 측은 "목동 아파트는 내진설계도 이뤄지지 않아 안전 위험이 크고 주차 문제로 소방차조차 제대로 못 들어오고 있다"며 "목동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집값 때려잡기를 위한 무분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집회 배경을 밝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 규제가 엿가락 휘듯이 왔다갔다하는 데 주민들 피로감이 최대치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목동 사태는 정부 규제의 오락가락 행태에 사실상 반기를 드는 대표적 사례"라고 밝혔다.
재건축 안전진단 긴급공고를 놓고 일부 구청과 정부 간 기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송파구청과 강동구청은 재건축 안전진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긴급공고를 최대한 줄여달라는 주민 요구에 당초 3일로 공고를 내려고 준비했으나, 이를 눈치챈 행정안전부가 규정을 지키라며 5일간 공고를 지시해 결국 5일간 공고를 냈다. 구청 한 관계자는 "지방계약법 시행령 35조에 따르면 긴급공고 기간은 5일이 맞는다"면서 "주민 의견을 수렴해 당기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법적 문제가 우려돼 5일로 냈다"고 말했다.
[이지용 기자 / 추동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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