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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M] 자본잠식인데 신용등급은 `AAA`인 기업
입력 2018-02-23 14:26 

[본 기사는 2월 21일(08:58)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부채가 5조원이 넘어 누가봐도 '부실 덩어리'처럼 보이는 기업이 신용등급은 'AAA'라면?
'AAA'는 19개 신용등급 가운데 최고 등급이다. 현대차 SK텔레콤 등 굴지의 우량 대기업들이 여기에 속해 있다.
그런데 부채 규모 수조원대에 부채비율 500%가 넘는 기업이 버젓이 수년째 최상위 등급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나 업계 일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20일 현재 한국광물자원공사 회사채는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AA'를 받은 상태다. 이 회사 채권은 2009년부터 줄곧 이 등급을 유지해 왔다.
대한석탄공사의 신용등급은 AAA 바로 다음인 'AA+'이다. 2005년 NICE신용평가로부터 AA등급으로 평가받은 뒤 2008년 한 단계 뛰어올라 지금의 등급이 됐다.

두 회사 공통점은 부채비율을 측정할 수도 없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2017년 6월 말 기준으로 두 공기업의 총부채는 각각 5조원, 1조원이 넘는다. 두곳 말고도 부채비율이 500%가 넘는 한국석유공사 역시 신용등급이 'AAA'이다.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자녀 학자금을 지급하고, 한국석유공사와 대한석탄공사 등에서 채용 비리 문제가 제기되는 등 공기업 구조조정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생기고 있음에도 이들이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기업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는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강하게 반영된다. 사업이 공공성을 띠는 공기업의 특징 때문이다. 정부 지원이 법령으로 정해져있기도 하다. 주요 공기업은 국가 신용도와 같은 수준의 신용등급을 갖고 있으며, 중앙정부로부터 직접적 지원을 받지 않는 지방공기업 역시 공공성을 인정받아 높은 수준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대한 추가 지원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바 있지만 신용평가사는 같은 이유로 신용등급 변경에 나서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점을 이용해 공기업이 자금을 쉽게 낮은 이자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채권이나 기업어음을 발행할 경우 신용등급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자율이 신용등급에 의해 결정될 뿐 아니라, 발행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반대로 국가가 보장하는 공기업은 손쉽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굳이 경영을 개선해 재무구조를 정상화할 필요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대한석탄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올해에만 각각 9200억원, 2500억원을 기업어음으로 조달했다.
신용평가사는 정부 지원과 공기업을 따로 볼 수 없는 만큼 공기업에 높은 등급이 매겨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공기업이 법적 지위를 갖추고 있기에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신용등급이 바뀔 이유도 없다고도 해명했다. 현실적으로 공기업이 파산할 경우 대외적으로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재무적 지표를 고려하지 않는 점은 신용평가사의 평가방법론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가령 한국기업평가의 공기업 신용평가방법론에는 '자체채무상환능력에 근거한 독자등급도 등급결정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쓰여 있으며 산업매력도와 수익성 등에도 등급별 기준선이 제시돼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기업은 AA~AAA 사이 등급에 위치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기업의 재무상태만 놓고 보면 투자등급은 고사하고 누구도 선뜻 투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공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상태나 현금흐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대한석탄공사의 등급이 AA+로 책정된 이유도 부채상환능력이 다른 공기업보다 떨어져서가 아니라 유사시 정부 지원 가능성이 다른 공기업에 비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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