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주가 반등때마다 매물 쏟아내는 기관, 왜?
입력 2018-02-13 17:52  | 수정 2018-02-13 19:39
기관투자가들이 유가증권과 코스닥 시장 양쪽에서 '팔자'에 나서면서 미국 증시에 비해 상승 탄력성이 둔해지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1.70%, 1.56% 상승하며 이틀 연속 1% 이상 오름세를 보였다.
13일 코스피지수도 이틀째 올랐지만 상승률은 0.41%에 그쳤다. 코스닥지수는 하루 만에 약세로 돌아서고 말았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선 모처럼 외국인이 3000억원 이상 순매수했지만 기관투자가들은 여전히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투자가는 조정장이 시작된 지난 5일부터 13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도합 1조20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변동성"이라며 "기관들은 공통적으로 위험을 줄여놓고 설 연휴에 미국의 경제지표 등을 관망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종목별(5~12일 기준)로는 삼성전자를 4380억원, 셀트리온을 3870억원가량 순매도했다. 최근 조정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을 기관들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셈이다. 이어 KODEX 레버리지, KODEX 코스닥150레버리지가 기관투자가 순매도 3~4위를 기록했다.
반대로 순매수 1위는 KODEX 200, 2위는 TIGER 코스닥150으로 나타나는 등 기관들이 주로 상장지수펀드(ETF) 매매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종목 매매로 변동성이 심한 지금 장세에 대응하기보다는 비용이 저렴하고 인버스 상품이나 현물을 이용한 헤지도 가능한 ETF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은행들은 주가 조정이 펼쳐진 최근 6거래일 동안 KODEX 레버리지(1883억원), KBSTAR 코스닥150선물레버리지(782억원), KINDEX 200(617억원) 등 ETF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순매수 상위 종목 10개 모두가 ETF였다. 상위 20위까지 넓히면 ETF가 18곳, 상장지수증권(ETN) 1곳으로 개별 종목으로는 셀트리온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보험도 셀트리온, 롯데케미칼, SK하이닉스 등 3곳을 제외하곤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ETF가 줄줄이 순매수 상위 10위 안에 포함됐다. 투자신탁도 KODEX 200, KODEX 코스닥150이 1, 2위를 차지했다.
다만 기관 물량 가운데는 ETF를 발행한 운용사들이 외국인이나 개인의 매수 또는 매도에 응하기 위한 반대 방향의 매매가 뒤섞여 있다. 기관들이 증시의 방향성을 확신하고 ETF를 매매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연기금과 투신 등이 최근 ETF를 사들이면서 운용사들이 호가에 응하기 위해 순매도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ETF가 장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최근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정장과 관련해 국내 ETF 시장 점검을 위해 한국거래소와 발행 증권사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ETF 발행사들은 ETF가 전체 시가총액의 2% 미만에 불과하다며 미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증시에서 ETF 거래대금은 미국발 조정장이 시작된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일평균 2조8162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일평균 거래대금(1조643억원)의 2.6배에 이르는 수치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ETF 매수가 늘면 현물 주식도 그만큼 더 사고, 반대로 매도가 늘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며 "ETF가 현물을 더 많이 거래하게 만들기 때문에 주가 조정을 더 가파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상철 슈로더투신운용 본부장은 "미국은 ETF와 인덱스펀드가 전체 시총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커지면서 펀드와 달리 실시간으로 매매하는 데 따른 리스크가 현실화됐다"며 "아직까지 한국에선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향후 미국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락장에선 증권사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ETF를 구성하는 실제 종목들을 매도하는 이른바 '환매'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김찬영 삼성자산운용 ETF 컨설팅팀 부장은 "개인들이 하락장 공포로 ETF를 매도하면서 최근에 환매가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기관들은 개별 주식 매도와 달리 ETF는 저가매수하는 분위기인 데다 ETF가 전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밖에 안되는데 시장 전체를 흔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박성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기관투자가 가운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가리키는 '금융투자'에서 유독 순매도가 많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금융투자가 선물, ETF 등에 대해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순매도로 기록되는 금액이 많다"며 "금융투자 계정의 순매도를 제외하고 기관들의 매매 패턴을 보는 것이 맞는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융투자는 이날까지 8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기록했다. 반면 투신은 8거래일, 보험은 10거래일 연속 매수 우위였다.
[정슬기 기자 /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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