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의리 초콜릿 그만두자" 고디바 사장이 제안?
입력 2018-02-05 10:54  | 수정 2018-02-12 11:05
고급 초콜릿 메이커 '고디바' 사장이 제안, '호의적' 반응이 주류
"좋은 의미의 '의리'에 초콜릿 붙이면 부정적 이미지" 지적



"이제부터 (밸런타인데이에 여성이 남성에게 인사치레로 주는) '기리(義理)초코' 선물을 그만두자". 이달 1일 자 일본 유력 경제신문 조간에 실린 전면 광고 문구입니다.

이 광고는 광고내용도 그렇지만 광고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메이커 "고디바"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리초코'는 일본에서 여성이 밸런타인데이(2월 14일)에 연애감정이 없는 남성에게 평소 감사의 기분을 담아, 또는 화이트데이에 답례를 기대하고 의례적으로 건네는 초콜릿을 말합니다. 연인에게 사랑 고백의 의미를 담아 선물하는 원래 의미의 초콜릿은 '혼메이(本名)초코'로 불립니다.

광고는 기리초코를 누구누구에게 줘야할지 고민하다 보니 밸런타인데이가 싫어졌다는 여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리초코, 무리하지 말자"고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이 광고는 인터넷에서 당장 화제가 됐습니다.

"맞는 말이다. 매년 밸런타인데이 때마다 고민이었는데 초콜릿 회사가 이런 광고를 내주니 고맙다". "'무리하지 말라'니 그걸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니 아예 '기리초코 금지'라고 잘라 말해 주면 더 좋겠다". "고디바는 고가품이다. 그런 비싼 초콜릿을 기리초코 선물로 돌리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그 회사는 기리초코와는 관계가 없을 테지만 직장여성이 인간관계 때문에 초콜릿을 돌리는 사회 풍조에 누군가가 '노'라고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광고다". 인터넷에는 호의적인 반응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초콜릿 회사가 구매자제를 촉구하는 듯한 광고를 낸 이유가 무엇일까.

프랑스인 제롬 샹샹 고디바 사장은 먼저 "의리인정"이나 "의리가 강하다"와 같이 쓰이는 일본어의 '기리(義理)'라는 말은 가장 일본다운 단어로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에 초콜릿이 붙어 '기리초코'가 되면 대번에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20년 이상 일본에 거주, 궁도도 즐기는 그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고통이 된다면 초콜릿 메이커로서는 슬픈 일이고 그런 관습은 없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의무감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1년에 한 번인 이벤트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기분을 담아 사장의 사인이 들어간 메시지를 광고로 내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서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연인의 날"로 기려온 밸런타인데이가 일본에 들어온 시기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계조사를 실시하는 총무성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알려지지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습관이 확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30대의 여성 직장인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에는 '기리초코'가 확실하게 정착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 대상 정보사이트 '마이나비우먼'이 작년 12월에 실시한 인터넷 조사에서는 20대와 30대 여성 252명 중 71%가 "회사에서 초콜릿을 주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회사에서 밸런타인 때 '손타쿠(忖度. 스스로 알아서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25%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아무 때나 초콜릿 이야기를 꺼내는 상사"에게 신경이 쓰여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그저 그런 초콜릿을 선물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손타쿠'를 일찌감치 그만둔 기업도 있습니다. 도쿄(東京)에 본사를 둔 교에이(共榮)화재해상보험은 25년 전 밸런타인데이 때 여성사원의 사내 인사치레 초콜릿 선물을 금지했습니다. 금지하기 얼마 전까지 버블경제가 한창이어서 전국 140여 개 지사 간에 업무 연락 편으로 오가는 인사치레 초콜릿이 너무 많아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 였던게 이유였습니다.

한 여성사원이 동료들에게 "기리초코 비용을 기부하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한 계좌 500엔의 모금을 시작한 게 백 수십만 엔이 모여 NGO를 통해 서아프리카 말리의 난민캠프에 전액을 지원했다. 이 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총 3천300만 엔(약 3억5천700만 원)을 지원, 현지 난민캠프의 경지정리와 우물파기 등에 쓰이고 있습니다.

인사치레 초콜릿 선물 폐지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나비우먼 측은 "기업의 준법의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기리초코를 요구하는 듯한 언동을 '괴롭힘'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를 감안, 금지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 같다"고 풀이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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