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꼭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도 내전으로 늘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의 수도 카불에서는 지난 27일(현지시간)에도 탈레반의 구급차 자폭테러로 최소 95명이 숨지는 등 최근 대형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네 번째다. 재건·구호 사업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온 외국인들도 잇단 테러 소식에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도 여전히 들린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유네스코에서 근무하는 송첫눈송이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송 씨는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통합과 국민정체성 재건을 위해 설립된 국립문화프로그램의 부매니저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로 현지 근무 3년째인 그는 바미얀문화센터 프로젝트 등을 이끌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바미얀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특히 가난한 지역입니다. 탈레반에 의해 불상이 파괴된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곳 사람들은 각 계절마다 수천 명씩 모여 전통 축제를 즐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재 복원이나 의식주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들이 원하는 건 달랐어요. 문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찾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미얀문화센터 프로젝트는 한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대부분의 지원을 하고 있다. 2014년에 첫 발을 내딛은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한국과 아프간 정부가 후원국(donor)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자국 문화 프로젝트에 돈을 투입한 것만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미얀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카불 유네스코 송첫눈송이 부매니저
"바미얀문화센터는 현재 건설 중에 있지만 벌써 이 이름으로 많은 축제와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사진전을 비롯해 보석·옷 만들기 등 여성들을 위한 직업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특히나 여성의 활동에 제약이 많은 나라인데, 문화를 활용해 자신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성의 삶도 개선되고 있습니다."실제로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아프가니스탄' 사진 대회는 현지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오랜 전쟁과 내전으로 지친 현지인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이 요청을 한 행사로 시작된 이 전시는 정부가 지원에 나서며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엔날레로 자리잡게 됐다. 지난해 '부활(rebirth)'이라는 주제로 열린 사진전은 현지를 넘어 해외 전시도 진행 중이다. 3월에는 한국에서도 전시회가 열린다.
송 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하면서 무엇보다 인권으로서의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결국 난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이들에게 돈과 음식 그 이상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문화에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난민들도 각기 다른 배경을 갖고 살아왔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연결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문화만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이런 거 한 두 개 한다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꾸준히 문화적인 삶에 노출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변화는 꾸준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송 씨는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것은 때론 현장에서 닥치는 어려움들로 가끔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감 또한 크다"며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어려운 국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은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기에 평화의 방벽 또한 그 곳에 세워야 한다'는 유네스코 헌장이 바로 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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