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얀마 이식수술 새역사 써준 서울대병원
입력 2018-01-22 16:51  | 수정 2018-01-23 14:57
이광웅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팀과 양곤스페셜티병원 간담췌외과 의료진이 함께 참여한 57세 남성의 간 이식 수술과정이 병원 강당에서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양곤 만델레이 등 미얀마 각지에서 모인 100여명의 의료진이 수술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신찬옥 기자>

"프로페서 리, 제주딘바데(감사합니다라는 뜻의 미얀마어)! 제주딘바데!."
20일 오전 미얀마의 양곤스페셜티병원(YSH)에서 개최된 서울대병원과의 컨퍼런스 장소에 '깜짝 손님'들이 등장했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국제협력본부장)가 이 병원을 찾아 간 이식 수술을 해준 환자들과 간을 나눠준 기증자들이었다. 생명의 은인을 다시 만난 이들은 행사 내내 이 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이 교수도 한 명 한 명 안색을 살피며 반갑게 맞았다. 수십 명의 YSH의 의료진들이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 교수는 지난 3년간 YSH의 의료진과 10건의 간 이식 수술을 함께 하고, 30여 명의 의료진이 한국을 찾아 세계 최고의 서울대병원 시스템을 직접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준 멘토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와 틴틴마 양곤스페셜티병원 간담췌외과 과장(뒷줄 왼쪽 여섯째부터), 멘토와 멘티 관계를 맺은 서울대병원 의료진과 양곤스페셜티병원 의료진들이 간 이식 수술로 살려낸 환자와 기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찬옥 기자>
이 교수 등 서울대병원 의료진 10여 명은 라이브 수술과 컨퍼런스를 위해 미얀마 양곤을 찾았다. 19일에는 57세 남성 간경화 환자에게 27세 조카가 기증한 간을 이식하는 수술 전 과정이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황금의 나라 미얀마에서 '골든 핸드'로 통하는 이 교수의 수술을 보기 위해 수도인 양곤은 물론 만델레이 등 전역에서 의대 교수와 진공의, 학생 100여 명이 몰렸다. 미얀마 국영방송인 MATV도 장기이식 특집을 편성해 이날 행사와 이 교수의 인터뷰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은 미얀마 정부와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의료진 교육과 공동 수술 등을 협력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20일 양곤스페셜티병원에서 체결했다. 타 미얀마 보건체육부 보건담당 국장(차관급)과 이광웅 교수(앞줄 왼쪽 셋째부터) 등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찬옥 기자>
공여자의 간 적출과 수혜자의 이식 수술이 두 개 수술실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동안 의료진 수십여 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이 교수는 두 수술실과 윗층 컨퍼런스룸까지 오가며 라이브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미얀마 의료진 대부분은 자기 일이 끝난 후에도 이 교수의 수술을 보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중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다가 이 교수가 주요 수술부위를 마무리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가 하면, 그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이 교수가 경쾌한 손놀림으로 이식된 간과 수혜자의 간정맥·간문맥을 연결할 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감탄의 탄성이 나왔다. 최영록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가 10시간이 넘는 수술시간 동안 이 교수와 번갈아 집도했고, 윤경철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 진료교수는 적출한 간을 잘 이식할 수 있도록 혈관을 연결하고 다듬는 '벤치 수술'을 맡았다.
이날 이 교수팀과 함께 수술에 참여한 틴틴마 YSH 간담췌외과 과장은 "YSH 역사상 처음으로 라이브 수술이 중계된 오늘은 우리 병원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젊은 의료진들이 귀한 배움의 기회를 얻었고 앞으로 서울대병원과 협력 기회도 늘어나는 만큼 훌륭한 병원을 만들어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얀마 의료진은 배우겠다는 열의로 가득차 있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면서 "오늘 라이브 수술을 잘 준비하고 서울대병원 의료진을 따뜻하게 맞아준 YSH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YSH는 미얀마 정부가 전략적으로 장기이식 수술과 연구를 집중지원하는 병원이다. 미얀마는 지난 2003년 뇌사자 간이식에 성공했지만, 살아있는 기증자의 간을 이식하는 수술은 10년 넘게 답보상태였다. 해외 의료진을 초빙해 많은 수술을 진행했지만 이 교수를 만나고서야 줄줄이 성공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니니쉐 YSH 간담췌외과 의사는 이 교수의 실력에 대해 "그는 최고다. 홍콩, 인도,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의료진과 일해봤지만 비교가 되지 않는다. 놀랄만큼 빠르고 담대하며 적극적으로 수술한다"며 감탄했다.
서울대병원과 YSH의 이번 협력은 여러모로 진일보한 '메디컬 원아시아'모델로 주목된다. 한국의 일방적 원조가 아니라 미얀마 정부와 현지 기부재단 등이 의료진의 교육과 연수 비용을 부담하는 공동협력 방식이 가장 눈에 띈다. YSH 의료진과 직원들은 작년 초부터 순차적으로 서울대병원을 찾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배웠다. 의사는 물론 중환자실과 수술장 간호사, 병원 코디네이터까지 30여 명이 한 달에서 많게는 6개월까지 머무르며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받았다. 박성미 서울대병원 수술실 간호사는 "이 곳 간호사와 코디네이터까지 한국 연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이식센터 운영 전반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한 이 교수님 아이디어 덕분"이라며 "한국 의료진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이 만들었다. 워낙 정이 들어 나이가 어린 미얀마 간호사들은 저를 '엄마' 이 교수님을 '아부지'라고 부를 정도"라고 말했다.

이렇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두 병원은 올해부터 협력모델을 간 이식 외에 암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20일 YSH에서 미얀마 정부와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해 의료진 교육 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과 권용진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대표해 이 교수가 협약식에 참석했고, 우리 보건복지부 격인 미얀마 보건체육부 보건 담당 타�� 국장(차관급)이 정부 대표로 서명했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은 지난 2011년부터 양곤 의대, 양곤제너럴병원, 양곤 어린이병원 등과 학술교류 및 공동수술, 미얀마 의대 교수진 연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해왔는데, 이번에 YSH까지 협력을 확대하게 된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양국간 의료협력 분야를 YSH와 진행한 간 이식뿐 아니라 종양학, 장기이식, 비뇨기학, 심장학, 산부인과학 등으로 확대하고 연간 5~10명의 미얀마 국립병원 의학자를 초청해 연수 기회를 주며 서울대병원 지도교수가 현지 공동수술 및 공동세미나,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교수의 간 이식 수술이 '민간 외교관'역할을 한 것은 미얀마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가 간 이식 수술로 70여 명에게 새 생명을 찾아준 카자흐스탄에는 '이광웅 나무'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현대의학 발전에 공로를 세운 스무 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수술비는 다른 나라 의료진의 두 배에 달하지만, 카자흐스탄 환자들은 이 교수를 모시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조지아에서도 10여 명의 환자를 수술하는 등 이 교수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의사로 통한다. 특히 해외 의료진 교육에도 적극 나서 세계적으로 그가 가르친 외국인 펠로우만 카자흐스탄 50명, 미얀마 10여 명 등 100명이 넘는다.
이 교수는 "제가 무료수술을 하게 되면 병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원하는 대로 수술을 해주려면 유료로 해야 한다고 했더니 대부분 기꺼이 받아들이더라"며 "의료진 교육과 멘토링은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간 이식수술과 의료진 교육으로 쌓은 신뢰가 사회 경제적 협력까지 확대되고, 나아가 양국간 정치적 관계까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며 "일년에 몇 번씩 찾는 카자흐스탄과 조지아는 물론이고, 간 이식 수술과 교육을 원하는 어느 나라든 찾아다니며 양국간 가교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YSH가 초청한 서울대병원 멘토들이 참석해 현장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등 이야기꽃을 피웠다. 중환자진료부 오승영 진료교수와 마취통증의학과 양성미 진료교수, 장기이식센터 정미라 수간호사와 신선미 코디네이터, 의과계 중환자실 이미미 수간호사와 김형선 간호사, 수술실 송주화 간호사가 이날 멘토링에 함께 했다. 향후 미얀마 정부와 소통하며 의료협력을 주관할 공공의료센터의 김계형 교수와 윤선향 파트장도 MOU행사를 주관하고 현장을 돌아보며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미얀마 양곤 =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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