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린이집-유치원 영어수업 금지에 `방문 선생님, 학습지` 문의 폭주
입력 2018-01-09 16:25 

"아이가 어린이집 영어활동 참 좋아했는데 이제 방문과외 알아봐야 겠네요"
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방침을 밝히면서 불안감에 휩싸인 학부모들의 발걸음이 학습지 방문과외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가 영어교육 금지 강행과 유예 등을 오락가락하면서 학부모들 혼란만 키우고 있다.
9일 유아기 자녀를 키우는 서울·인천 지역 어머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확인한 결과 정부의 '어린이집·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방침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게시물이 다수 발견됐다. 특히 기존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진행되던 영어수업이 금지되면 학습지 등 방문과외를 알아보겠다는 의견이 많아 사교육 팽창의 염려를 낳고있다.
인천의 한 '맘카페'에는 지난 일주일간 '외국인 과외쌤 추천해주세요' '튼튼영어, 웅진, 눈높이 중 영어학습지 어디가 좋나요?' 등 괜찮은 사교육 업체를 수소문하는 글 수 십건이 쏟아졌다. 한 맘카페 회원은 "아이가 어린이집 영어활동을 무척 좋아하기도 했고, 학부모 입장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어 좋았다"며 "이를 무작정 금지시켜버리면 사교육을 알아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냐"고 토로했다. 어찌 됐든 아이의 영어 공부를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영어 수업이 금지되면 사설 학원으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영어 학습지 업체에서 방문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 교사는 "최근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어머니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연락처를 확보해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A학습지 업체는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등록자 수가 전년 대비 20%가량 늘어난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교육 팽창의 풍선효과 우려가 현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설익은 정책을 밝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 금천구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양모씨(31)는 "유치원의 영어교육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노래 부르기 등 놀이 위주의 활동이다"라며 "이를 중·고등학생의 선행학습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가 소득에 따른 영어교육 격차를 키울 것이라는 점도 염려한다.
유치원정보공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 사립유치원 학부모 부담금은 평균 21만6189원이며 이중 방과후과정 비용은 3만3481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410곳의 월평균 교습비는 같은 해 4월 기준 52만원에 달했다. 3만원짜리 영어수업을 막으려고 수십만원짜리 영어수업을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학부모들의 반발은 국민청원으로도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금지 방침 철회 청원'에는 9일 기준 7000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비슷한 청원이 수십 건 더 제기됐고 각각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동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지 방침 철회'에 동의하는 실제 학부모들의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발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영어수업 금지를 일정기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실무자들을 이를 모르고 있어 내부에서조차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영어수업 금지를 유예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정책 방향에 대해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며 "하반기나 내년으로 유예한다는 얘기는 윗선에서 나온 얘기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정작 담당자도 모르는 사안에 대해 얘기만 무성한 상황인 셈이다.
한편 9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들이 시행 연기 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하면서 정책 시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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