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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운용, 남의 건물 셋방살이 까닭은
입력 2018-01-08 17:47  | 수정 2018-01-08 19:47
부동산펀드 60조시대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년 전 그룹 본사인 서울 광화문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을 나와 인근의 다른 빌딩으로 회사를 옮겼다. 멀쩡한 자기 집을 뛰쳐나와 남의 집에 셋방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계열사가 같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운용사만 외부에 나와 있으니 불편한 경우가 잦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KB자산운용도 비슷한 처지다. 서울 여의도에 유진투자증권 빌딩을 사놓고도 못 들어가 경쟁사인 신한금융 빌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자사 사모펀드가 소유한 빌딩에 입주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고유계정과 신탁계정 간 거래 금지' 조항 위법이라는 금융당국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부동산 펀드 순 자산 규모가 60조원을 돌파하는 등 시장이 나날이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여전히 남아 운용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동산 펀드는 주로 기관투자가가 투자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모펀드가 강하다. 하지만 최근 개인들도 부동산 재간접펀드 투자가 허용되면서 공모펀드 시장까지 커질 조짐을 보이자 부동산펀드를 둘러싼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최창훈 미래에셋자산운용 부동산부문 사장은 "(규제 때문에) 기관투자가의 부동산 펀드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지만 상품이 이를 못 따라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부동산 펀드는 순자산 기준 95%를 사모펀드가 차지하고 있다. 펀드 수는 적지만 덩치가 큰 덕분이다. 지난해부터는 부동산 공모펀드 출시가 이어지면서 공모펀드 비중이 5%대로 올라왔다. 하지만 부동산 공모펀드가 여전히 투자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은 상품이 다양하지 못하고 수익률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국내 부동산 공모펀드에는 대출투자 상품이 없다는 점이다.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집해 빌딩을 살 수는 있지만 빌딩을 사기 위한 돈을 대출해 줄 수는 없다는 얘기다. 부동산은 자산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상업용 빌딩을 구매하려면 아무리 기관투자가라 해도 자금 규모가 상당히 커야 한다. 하지만 이 상업용 부동산을 구매하기 위한 대출 자금을 펀드에서 빌려 쓴다면 훨씬 작은 규모로도 투자가 가능해진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실물 부동산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리스크도 줄이고 안정적 수익도 노릴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부동산 공모펀드의 대출 투자 기법을 주로 활용하는 '스타우드 프로퍼티 트러스트'가 시가총액 6조원이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 2009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미국·유럽 등 부동산에 대출해 주는 상품을 주로 내놨는데 설립 7년여 만에 투자 규모가 370억달러(약 41조원)를 넘어서면서 모기지리츠 업계 3위로 올라섰다.
또 국내 운용사들이 부동산 공모펀드를 만들 때 트랜치(tranche·동일한 담보에 대해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것)가 허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만큼 투자자의 위험선호도에 따라 선택할 만한 상품이 많지 않기 때문. 예를 들어 지난해 말 국내 한 운용사가 출시했다가 판매가 미달된 A펀드를 보면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는 수익성 높은 빌딩을 기초자산으로 했다. 운용사는 5~6%대 기대수익률을 제시했지만 기관들은 이 정도 수익률은 너무 낮다고 보고 투자를 꺼렸다. 그 정도 중심가에 수익성 있는 곳이면 수익률이 8~9%대, 심지어 두 자릿수 수익률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 것.

하지만 이런 높은 수익률이 나오려면 투자자별로 리스크 수준이 달라야 한다. 해외 운용사가 만든 부동산 공모펀드는 투자자별로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 지분(에퀴티)투자로 나눠 투자가 가능하다. 가령, 선순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수익은 낮지만 에퀴티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최종 수익률은 높게 책정하는 식으로 수익률을 달리 제시한다. 반면 국내 운용사들은 한 펀드 내에서 트랜치를 달리한 투자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부동산 공모펀드에 있어서는 상품 구성력에서부터 밀릴 수밖에 없다.
펀드의 호텔 투자도 국내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호텔에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의 경우 펀드는 부동산만 소유하고 경영은 호텔업을 잘 아는 호텔 사업자가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금융회사가 호텔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도 사실상 막혀 있다. 최근 문제가 됐던 미래에셋금융이 여기에 해당한다. 미래에셋은 금산법 문제를 피하기 위해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금융계열사가 사들인 포시즌스 호텔을 미래에셋컨설팅에 임대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대상으로 몰린 것이다.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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