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강철비 양우석 감독 "북핵 위험 더 커지면 지방 선거 못 치를지 모른다"
입력 2018-01-02 10:01 
양우석 감독이 현장에서 스태프와 다음 장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밀리터리 매니아로 알려진 양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군사 지식을 공유하는 데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사진제공=NEW>

남북 핵전쟁이라는 유례 없는 소재를 들고 나온 영화 '강철비'가 지난 1일 관객 412만명을 돌파했다. '1987', '신과 함께', '스타워즈' 등 쟁쟁한 경쟁작이 붙은 12월 극장가에서 첩보 액션물을 띄워 손익 분기점을 넘긴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최근 서울시 삼청동 모 카페에서 만난 양우석 감독에게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를 물었더니 "지금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서"라고 답했다.
'강철비'의 스토리는 북한의 쿠테타로 시작된다.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쿠테타 과정에서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다.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전쟁을 막기 위해 엄철우에게 다가가 공조를 제안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을 너무 호의적인 시각으로 다룬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양 감독은 "대한민국을 구원할 최고의 힘은 상상력"이라며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에 적극적인 상상을 하지 못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양 감독은 진보와 보수 양 진영 모두 북핵 문제를 정쟁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현실을 꼬집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 쪽에서는 북한은 70년 주적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만 합니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자기 이익에 따라 북핵 문제를 보고 있는데 우리만 정치 논리에 빠져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영화에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 국무 장관과 화상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 국무 장관이 "우방의 입장도 생각 좀 해 달라는 말입니다"고 말할 때 그의 얼굴은 청와대 집무실 한 쪽 벽을 가득 채운다. 반면, 이 말을 듣는 한국 대통령은 그 얼굴의 절반 쯤 되는 크기로 그려져 양국 위상 차이가 극명하게 대조된다. "우리가 미국을 너무 순진하게 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은 자국에 핵 위협을 가한 나라는 세계 대전을 각오하고서라도 없앤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전 미국 국방부 장관 윌리엄 페리도 1994년 1차 핵 위기 당시 북한과 전쟁할 계획을 짰다고 밝힌 바 있죠."
양우석 감독이 영화에 나오는 청와대 집무실에서 촬영 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NEW>
양우석 감독이 '강철비' 주연 배우 곽도원과 캐릭터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미 양 감독의 전작 '변호인'을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사진제공=NEW>
미국에서는 이미 3월 말 군사행동설이 나오고 있다. 그는 선거 도구로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정치인들에게 꼭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고 했다. "6월 지방 선거 과연 치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유사시 북한을 재래식 무기로 타격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핵을 보유한 나라를 재래식 무기로 공격한 역사적 전례가 없어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이 없어지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영화 속 곽철우는 "핵은 핵으로밖에 못 막는다"고 말한다. 양 감독의 생각도 이와 일치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건 내 생각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최초 핵실험을 한 이후 소련이 핵을 갖고 영국, 프랑스가 보유하죠. 미국이 자국의 핵우산을 내세워 프랑스 핵 보유를 반대하자 드골이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겠냐'며 독자적 핵무장을 추구합니다. 적성국이 만들면 좋든 싫든 가져야 하는 게 핵이 가진 속성입니다."
'강철비'의 원작인 웹툰 '스틸 레인'(2011) 역시 양 감독 작품이다. 박민규가 무규칙 이종소설가라면 양우석은 영화, 웹툰, 소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무규칙 이종창작자라 할 수 있겠다. 그는 현재 스낵 컬쳐(스낵을 먹듯 짧은 시간 안에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의 등장으로 국내 영화 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하고 관계자들에게 오리지널 콘텐츠 개발에 매진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영화는 시장이 작다는 근본적 어려움이 있는 데다가 스낵 컬쳐가 생기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류가 잘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작 콘텐츠의 양을 봤을 때는 일본보다 못합니다. 정치권과 문화계가 합심해서 한류의 토양 자체를 비옥하게 하지 않고는 생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양우석 감독이 차로 촬영을 앞두고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제공=NEW>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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