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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윤현민 "아동성범죄 기사에 관심…인간으로 한단계 성장"
입력 2017-12-18 07:02 
윤현민은 '마녀의 법정'을 통해 성범죄를 외면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제공| 제이에스픽쳐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성범죄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다. 신체적인 조건이 차이 나는 남녀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하고, 성별에 상관 없이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 KBS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그동안 드라마 주제로 다루기 까다로웠던 성범죄를 내세웠다. 성범죄를 자극적이지 않게 환기하면서 작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라는 결과를 동시에 냈다.
소아정신과 의사 출신 초임 검사 여진욱을 연기한 윤현민(32)은 올해 OCN '터널'과 '마녀의 법정'으로 이어지는 흥행작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야구 선수 때도 연타석 홈런은 못 쳐봤다. 좋은 작품을 연달아 만나는 게 얼마나 확률이 낮은 건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장르물이지만, 분위기는 서로 달랐던 두 작품을 만나 윤현민은 주연급 배우로도 성장했다.
'마녀의 법정'의 성공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전작 '란제리 소녀시대'가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SBS '사랑의 온도' 등 경쟁작들이 남녀의 로맨스를 다뤘기 때문이다. 방송 전부터 성범죄라는 주제에 눈살 찌푸리는 시청자도 있을 만했다.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TV를 켰는데, 불편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 보기 힘들진 않을까 우려했죠. 제작진도 걱정했고요. 다행히 많이 봐주셨고, 배우들과 공분해주신 듯해요. 이렇게 높은 시청률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죠."
여진욱은 소아정신과 의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어린 딸을 성폭행한 남자가 가벼운 처벌을 받은 데 분노해 검사가 됐다.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다. 피해 아동이 청소년이 된 후 피의자가 출소해 벌인 납치 사건은 윤현민에게도 힘든 촬영이었다.
"대본을 받았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마녀의 법정'을 하기 전에는 아동 성범죄 사건 기사는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어른으로서, 국민으로서 마음이 좋지 않아서였죠. 이제는 가슴이 먹먹해도 기사를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인간 윤현민으로서도 한 단계 성장한 듯합니다."
윤현민은 대본을 보고 화가 났지만, 연기할 때는 조심스러웠다. 실제 피해자가 드라마를 보고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려 또 다른 성처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촬영을 앞두고 대화를 나누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펑펑 우시더라고요. 저도 같은 감정이었죠." 윤현민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피해자의 입장에 선 검사 여진욱'이라는 방향성을 찾게 됐다.

그는 성고문을 당한 어머니와 어린 시절에 헤어지고 검사가 된 마이듬 역할을 맡은 정려원과 함께했다. 승소를 위해 모든 것을 하는 마이듬과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여진욱의 조화는 '성범죄'라는 요소가 자칫 성대결로 번지는 것을 막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했다. 제작진의 세심한 연출에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져 짜임새가 생겼다.
"정려원 누나와 정말 잘 맞았어요. 최고의 파트너였죠. 연기 외에도 저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첫 리딩 전부터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죠. 처음에는 누나가 조용하고 숫기가 없어서 놀랐어요. 친해진 뒤 누나가 '마이듬처럼 낙천적인 사람을 닮고 싶더라'고 얘기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성범죄 사건 현장과 법정이 이어지는 작품 특성상 여진욱 마이듬의 사랑 이야기는 넌지시 다뤄졌다. 여진욱이 마이듬의 상처를 이해하고,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마음을 알아갔으나 마지막회가 돼서야 서로 호감을 드러냈다. 윤현민은 신경 쓴 여진욱의 애정 표현이 화면에 잘 비치지 않아 아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여진욱이 마이듬을 점차 좋아하는 것을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으로 표현했죠. '마이듬'을 'My듬'으로 해놨는데, 정작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마이듬 이름에 하트를 넣는 건 과한 것 같아서 한 건데 저만 알았죠. '나만의 축제였구나'라고 싶었어요(웃음)."
연기하기 까다로운 작품을 큰 불편 없이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만나서였다. 지난 2009년 프로야구 선수로 경기에 뛰다가 배우로 전향한 윤현민은 '마녀의 법정'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여진욱을 만난 것이다.
"통통 튀거나 차가운 캐릭터를 했을 때는 일부러 톤이나 억양을 바꿨어요. 여진욱을 연기할 때는 실제로 친구들과 대화할 때 목소리였죠. 평소 행동도 여진욱처럼 빠릿빠릿하진 않아요. 앞으로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하려고요. 다음 작품으로 3연타석 홈런이 되길 희망합니다."
in999@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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