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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광주·여주 등 수도권에 겹규제…투자 17조원 막혀
입력 2017-12-11 17:51  | 수정 2017-12-11 23:42
수도권 규제로 신증설이 어려워 소규모 공장만 난립한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 일대.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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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간장 제조업체인 샘표식품은 장류가 한류 바람을 타고 전 세계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매출이 쑥쑥 늘고 있지만 그럴수록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경기도 이천 기존 공장에 시설 투자를 하려고 하지만 수도권 규제에 막혀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샘표식품은 기존 공장 바로 옆 8만5000㎡ 용지에 2000억원을 들여 발효용 간장 저장탱크 100개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공장 증설이 이뤄지면 인력 234명을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창고시설이 부족해 외부 물류창고 임대료로만 연간 13억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이천은 자연보전권역에 속해 있어 수도권정비계획법,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 개선에 관한 법률 등 수도권 규제에 묶여 기업들이 자기 땅에 마음대로 공장을 짓거나 늘릴 수가 없다.
경기도 관계자는 "샘표식품이 수도권 규제에 묶여 15년간 공장 증설을 못하고 있는데, 최근 간장이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 큰 인기를 끌자 공장을 아예 중동에 짓는 게 어떠냐는 말까지 나왔다"며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된 경기 동부지역에서 공장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동부 권역 최대 기업인 SK하이닉스도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시급하게 이천 공장 증설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최소 15조원 규모의 M16 공장을 물류 최적 입지인 이천에 짓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타이밍을 앞당기기 위해 경기도 등 관련 부처와 논의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충북 청주 M15 공장의 완공 시기를 2018년 말로 당초보다 6개월 앞당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천사업장은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과 수도권정비계획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에서 규제지역으로 정하고 있어 신규 공장 건설 시 외부로 공장 용지를 확대할 수 없다는 허들이 있다.

2009년 이명박정부가 수도권 규제 상당 부분을 풀었지만, 오염총량제와 연계된 자연보전권역 규제 개선은 이뤄지지 못했다. 또 SK하이닉스는 이천 공장 증설 시 수도권에 자원을 몰아준다며 다른 지자체나 관계당국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견제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이천, 광주, 여주, 가평, 남양주 등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있는 경기 동부지역에서만 수도권 규제로 묶인 중견기업의 투자 수요가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가 올해 상반기 경기 동부지역 기업들에 투자 의향을 직접 물어 실태를 파악한 내용이다.
경기도 규제개혁추진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샘표식품 같은 경기 동부지역 72개 기업이 공장총량제 등의 수도권 규제가 풀릴 경우 총 1조9920억원의 시설 투자를 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에 따른 추가 고용 효과는 3661명에 이른다. 여기에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까지 합치면 17조원의 투자가 새로 발생하는 셈이다.
실제 1984년 자연보전권역이 지정되기 전 이 지역에 설립된 공장은 총 32개로 1조1957억원이 투자됐다. 하지만 자연보전권역 지정 이후 지금까지 이 지역의 공장 신증설 투자는 38개사, 7963억원으로 대형 투자가 자취를 감춰 투자액이 3분의 1 토막 났다.
수도권 규제 효과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만 봐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이명박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대거 완화한 2009년 이후의 자료만 보더라도 서울·경기·인천은 5년 동안 연간 6.1%씩 투자가 늘어난 반면, 비수도권은 연평균 15.3%씩 급증했다. 비수도권의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 속도가 수도권에 비해 2.5배 정도 빠르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수도권에서 공장 신증설을 포기한 국내 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해외로 나가버린다는 데 있다. 다국적 백신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아시아 지역 전체에 공급할 백신 공장을 세우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에 6만㎡ 규모 자궁경부암 백신 제조 공장을 설립하려 했지만 수도권 공장총량제에 막혀 2006년 아시아 백신 생산시설을 싱가포르로 옮겼다. 미국계 전력용 반도체 생산업체 페어차일드코리아는 2000년대 초 경기 부천 공장에 7000만 달러 규모 증설계획을 추진했지만, 과밀억제권역에서 공장 증설을 불허하는 수도권 규제로 뜻을 접었다. 결국 이 회사는 국내 투자계획을 철회하고 중국에 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미국 유니버설스튜디오도 5조원을 투자해 2007년 경기도 화성시 시화호 남쪽 간석지에 420만㎡ 규모로 한국판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지으려 했지만 수도권 규제와 한국수자원공사의 거액 보상 요구로 좌절됐다. 이런 식의 해외 투자 유치 실패와 국내 자본 유출로 매년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국내에서 사라지고 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은 692억달러의 자본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를 평균 전 산업 취업유발계수에 대입하면 5년간 총 96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수도권 규제의 핵심인 수도권정비계획법은 국내 경제구조가 제조업 기반으로 움직이던 1983년 시행됐다. 이제 서비스산업 기반의 3차 산업 시대를 넘어서 융합지식 기반의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돌입했지만 아직까지 낡은 규제들은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셈이다.
[전범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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