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럼프 '충성심' 검증에 진땀 뺐던 빅터 차, '내정 막전막후'
입력 2017-12-11 15:45  | 수정 2022-05-09 11:48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겸 조지타운대 교수가 주한 미국 대사로 공식 내정됐다.
미국 정부는 지난주 외교부에 아그레망을 요청했으며 한국 정부의 승인 후 차 교수를 주한 대사 내정자로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차 교수는 내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를 거쳐 한국에 정식 부임한다. 2011년 성 김 대사 이후 두 번째 한국계 주한 대사다.
주한 대사의 공백이 역대 최장으로 길었던 만큼 외교부는 관련 절차를 최단 시간 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2014년 마크 리퍼트 대사는 접수 1주일 만에 아그레망을 받았다. 올해 1월 리퍼트 대사가 사임한 후 주한 대사는 11개월째 마크 내퍼 대사 대리가 맡고 있다.
정부는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 차 내정자의 부임을 원하고 있으나 외교부 관계자는 "미 상원 일정은 유동적이라 시기를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11일 외교안보 포럼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차 내정자의 부임 시기를 묻는 질문에 "미국 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통 학자 출신, 부시 행정부 시절 관료 경험도 갖춰
영국 옥스퍼드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친 차 내정자는 조지타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정통 학자 출신 인사다. 1994년 박사 논문으로 한미일의 삼각 안보 체제를 다룬 이후 지난 23년간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왔다.
조지 W.부시 행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시아 담당 국장과 북핵 6자회담 차석 대표를 역임하며 실무 경험도 갖췄다. 방북 경험이 있고 북한과 직접 협상을 했던 이력도 있다. 정부를 떠난 뒤에도 학자 자격으로 북한 인사들과 1.5트랙 만남을 가졌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몇 안되는 한반도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차 내정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부터 주한 대사를 강력히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공화당 출신 외교안보 전직 관료 50여명이 '반트럼프 연판장' 돌릴 때도 차 내정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워싱턴 현지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 인선의 기준은 충성심이다.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정부 인선에서 모두 배제됐다"며 "차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된다 해도 대사를 희망해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북 강경파, 사드 임시 배치에는 "찢어진 우산"이라 비판
부시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만큼 차 내정자는 워싱턴 내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알려져있다. 북한 체제 전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네오콘은 아니나 제재 국면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도 반대하는 인사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한의 압박' 정책과 괘를 같이 하는 것인데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는 생각이 상당히 다른 인물이라 걱정"이라 우려했다.
차 내정자는 현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임시 배치에 대해서도 강한 대립각을 세웠다. 차 내정자는 지난 7월 매일경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드 임시 배치를 '찢어진 우산'으로 비교하며 "2개의 천만 남은 찢어진 우산으로 뇌우(북핵)을 막을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차 내정자의 전문성이 북핵 문제 해결의 보탬이 될 것이란 평가도 있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 내 유일한 정통 전문가"라며 "북핵 문제를 다룰 때 별도의 훈련 기간이 필요 없고 워싱턴 내 인맥도 넓어 한미 정부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할 인물"이라 했다.
트럼프 '충성심 검증'에 진땀, 전문성 인정받아 내정
트럼프 행정부 주한 대사 후보로는 차 내정자와 함께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과 북핵 경험이 없는 월가 인사 등 5~6명이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6월 이후 전문성을 평가받은 차 내정자로 압축됐다.
하지만 지난 7월 차 내정자가 힐러리 클린턴 외교참모 출신인 제이크 설리번과 워싱턴포스트(WP)에 북핵 관련 공동 기고문을 낸 이후 트럼프의 '충성심 검증'에 걸리며 진땀을 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당시 차 내정자가 쉽지 않은 상황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차 내정자가 상원 인준을 거쳐 동계올림픽 이전인 내년 2월에 정식 부임한다고 해도 역대 주한대사 최장 공백 기록 갱신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국을 거친 미국 대사는 현재까지 22명인데 임무 교대 시 후임자 부임이 6개월 이상 늦어진 것은 6번에 불과하다. 최장 공백은 1955년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윌리엄 레이시 대사가 물러난 이후 있었던 9개월간의 공백이다. 현재 중일러 주재 미국 대사는 모두 부임을 완료한 상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선 지체는 주한 대사 뿐만이 아니다"며 "전반적으로 인사 적체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소홀히하기 때문에 부임이 늦었다는 해석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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