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방관 3인 인터뷰 "우리는 영웅도 불쌍한 사람도 아닙니다"
입력 2017-11-09 08:02  | 수정 2017-11-10 09:08
[사진 = 매경 DB]

'소방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신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영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엔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임에도 소방관 처우가 열악하다는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안쓰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는 "내 남친이 소방관이라고 하면 불쌍하게 보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글이 올라왔을 정도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은 소방관에 대해 하나쯤 자신만의 주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소방관들은 과연 자신들을 향한 이 같은 시선을 어떻게 생각할까.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매경닷컴은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대한 소방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년간 소방관으로 일하다 현재는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는 송 모씨(50)와 소방관이 된 지 4년째인 김 모씨(28), 8년차인 박 모씨(34) 총 세 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전·현직 소방관 3인 모두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건 맞지만 여타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일 뿐"이라며 "영웅처럼 여기지도 불쌍하게 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소방관, 없어선 안 되지만 위험한 직종'이라는 외부인식 느껴"
인터뷰에 응한 3인은 "'소방관은 목숨 걸고 일하는 직업'이라는 외부의 시선을 평소에 자주 체감한다"며 "일반인들은 우리를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가족·친구 등 주변 사람들은 아무리 안심시키려 해도 항상 걱정한다"고 공감했다.
박씨는 "소방관을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는 싫어하더라"라며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려고 연애 시절 장인·장모님께 인사드리러 갔었는데 소방관은 위험한 직업이라며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소방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아저씨는 언제 죽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며 "아이는 장난이었겠지만 이 말을 듣고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은연 중에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을 철저히 받고 안전장비도 착용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진 않은데다 어차피 직업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이 아니냐"며 "경찰이나 건설·제조·탄광 등 어느 업종이라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유독 소방관을 안쓰럽게 보는 시선이 가끔은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소방관 = 위험한 직업군'이라는 인식에 대해 송씨는 "일반인들은 소방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언론 보도를 지속적으로 접하니 특정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엔 좀 덜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유교사상이 자리잡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문(文)은 우대하고 무(武)는 경시하는 풍조가 잠재의식 속에 있다는 점도 소방관에 대한 인식을 굳히는데 한몫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처우 개선? 필요하지만 열악하지는 않아"
최근 몇 년 새 "소방관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지만 그에 비해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이에 따라 정계와 누리꾼들은 소방관은 안타깝게 바라보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제55회 소방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해 국가가 나서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소방관들은 본인들의 근무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송씨는 "처우가 열악하다는 생각은 안해봤다"며 "솔직히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생명을 구하며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강하고 든든한 '안전 지킴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국민들이 소방관에 관심을 가져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고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소방관도 분명 있겠지만 돈을 많이 벌 목적이었으면 애초에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씨는 "지인들 중 가끔 '돈도 적게 받는다는데 먹고 살만하냐'고 묻는다"며 "내 스스로 돈에 대한 고민보다는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혹시 내가 정체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떻게 하면 조직에 더 잘 흡수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마다 가치의 기준이 다른 것이니 돈도 못 받는 불쌍한 사람들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소한 일 전화 자제…정작 위급상황 놓칠 수 있어 "
소방관 3인은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를 하는 건 좋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땐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소방관의 처우'라는 주제가 언론과 정계, 국민에 의해 분위기에 휩쓸리듯 반짝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보단 소방관의 생리를 잘 아는 소방당국이 직접 나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부(소방 종사자가 아닌 자)의 요구로 환경이 바뀌는 건 한계가 있는데다 환경이 변한다 해도 제대로 유지될지 의문"이라며 "결국 소방당국 내부에선 외부의 눈치를 보는 일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씨는 "소방 조직은 경찰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일원화된 행정 체계가 정립돼 있지 않다"면서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으로 분류돼 있어 시·도에서 각자 관리하므로 자치단체마다 업무가 조금씩 다르고 예산·프로그램에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방청이 생기고 대통령도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으니 앞으로 점차 바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방관을 대하는 시민의식도 성숙해지기를 부탁했다. 송씨는 "집 현관문을 따달라든가, 집에 오수가 넘친다며 신고를 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며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소방관들이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119에 연락하는 건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김지혜 에디터]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