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그곳에 가면 절로 흥이…목소리로 농구코트를 달구는 그녀
입력 2017-10-31 18:26  | 수정 2017-10-31 18:38
박수미 삼성썬더스 장내 아나운서[사진 : 디지털뉴스국 윤해리 인턴기자]

"삼성썬더스, KCC를 상대로 19점 차의 뜨거운 승리를 거둡니다!"
지난 2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농구코트에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주인공은 경력 15년 차의 '홍일점'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 박수미 씨(34·삼성썬더스).
이달 초 프로농구 시즌이 막을 올리면서 그는 삼성 썬더스의 홈 경기마다 1시간 30분 이상씩 에너지를 쏟아낸다. 숨막히는 접전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때로는 신나는 목소리로 관객을 흥분시켰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심판의 판정 시그널에 집중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박 아나운서의 장점은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차분함, 그리고 힘있는 전달력이다. 프로농구가 시작된 1997년 이후 유일무이한 여성 장내 아나운서이다보니 더욱 관심을 받는다. 농구 관객들도 이제 박 아나운서의 팬을 자처하며, 목에 좋은 약과 레몬청을 구해다주기도 한다.
하지만 '홍일점' 꼬리표가 처음부터 달가웠던 것은 아니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더 매서운 평가를 받아야 했다. 박 아나운서는 남성 위주의 스포츠 아나운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남들보다 2배는 노력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Q)대학교 1학년, 20세 때 장내 아나운서로 데뷔했다. 직업을 갖기에 어린 나이였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운이 좋았다. 방송연예과 출신인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활발해 당시 유행한 '개인기'를 여기저기 보여주고 다녔는데 교수님이 그 장면을 기억하신 게 계기가 됐다. 수학능력시험 듣기평가와 같은 성우 목소리를 제법 잘 따라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졸업생이 운영하는 스포츠 대행사에 장내 아나운서로 추천해주셨다. 아르바이트로 생각했는데, 교육을 받고 2002년 겨울 농구장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이후 여러 스포츠협회에서 연락이 와 핸드볼, 야구로도 영역을 넓혔다.
Q)'홍일점' 장내 아나운서라는 수식어가 언제나 따라다닌다. 주목을 받는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편견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은 없는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똑같은 실수를 해도 '여자여서 그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관계자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선입견을 갖고 보는 분들이 있었다.
해서는 안 되는 큰 실수로, 선수의 이름을 잘못 소개한 적이 있다. 순간 말이 헛나와 크게 당황했고 사과도 했다. 그런데 이후 홈페이지와 기사에 '여자라서'라는 차가운 댓글이 달렸다. 분명 내가 잘못했지만 '여자라서'가 이유는 아니었는데… 내 역량 부족이었지만, 뭔가 조금은 억울했다. 코트에서 울리는 여자 목소리가 낯설었던 시절이다.

Q)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을 바꾸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신입 아나운서 시절에는 선배와 더블 아나운싱을 맡았다. 어렸고 분명 준비가 덜 됐던 시기다. 하지만 삼성썬더스에서 마이크를 혼자 잡은 후로는 책임감을 갖고 '내 팀'을 위해 일했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농구규칙집을 다시 한 번 손으로 베껴썼고, 말로 따라하기를 반복했다. 다른 팀의 경기장에 찾아가, 속으로 아나운싱을 연습한 적도 셀 수 없다.
다른 아나운서와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다양한 추임새도 개발했다. 우리팀이 잘할 땐 '하하하' 크게 웃고, 상대방의 실수에는 야유를 보내는 식이다. 상대팀 스텝들이 찾아와 선수의 사기가 죽는다며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Q)이제는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본인의 강점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편견을 깼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여자라는 것이 핸디캡이 아니라 무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선수가 다쳤을 때 여성인 내가 차분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위로하는 것에 관객들은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삼성썬더스에서 5년째 혼자 온전히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점도 이를 증명하는 것 아닐까?
Q)실수를 줄이기 위해 농구 경기 시작 전 준비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장내 아나운서의 존재감이 가장 큰 종목이 농구다. 경기 중에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중계를 해야 하다보니, 비중이 크다. 규칙을 공부하는 건 당연하고,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목소리를 상당히 오래 가다듬는다. 그날 준비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4~5시간 전에는 출근한다. 전광판 운영 등 시스템 운영팀과도 호흡을 맞추고, 리허설을 한다. 꼼꼼하게 준비해 관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만큼 올해 시즌도 많은 관중이 찾아와줬으면 한다.
[디지털뉴스국 이가희 기자 / 윤해리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