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중 협의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연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추진과 내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평창 동계올림픽 답방에 매몰돼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지난 8월 초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의 비밀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드 갈등' 해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만큼이나 '타협'이 급했던 중국에게 얻어낼 것이 더 있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 타협은 양측간 이익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전략 연구실장은 "이번 합의문에는 중국의 치졸했던 사드 보복에 대한 유감 표명조차 들어가지 못했다"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어야 했는데 관련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한중 협의문에는 '양측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괘도로 조속히 회복시킨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을 뿐 사드 보복에 대한 중국의 '인정'이나 '유감' 표명은 없다.
박 실장은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이상 한국은 향후에도 미중간 이익 충돌 지점에서 '제2의 사드 사태'를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 여지를 남긴 것"이라 우려했다.
이번 협의에도 포함됐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0일 국정감사에서 밝힌 대중 '3no 원칙(추가 사드 배치 계획이 없으며 한국은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에 편입하지 않고 한미일 동맹은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에 대해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줄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합의문에 포함된 '양국 군사당국간 채널을 통해 중국이 우려하는 사드 문제에 대해 소통하기로 합의했다'는 문구 역시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는 "사드의 군사적 우려에 대한 중국의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비정확하며 일방적이고 차별적인 측면이 있다"며 "사드는 국가 주권의 문제이자 북핵 위협에 대응한 방어용 무기라는 주장은 우리가 사드 배치 전부터 수차례 해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사드 추가 배치는 북핵 위협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한미일간 군사 협력은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며 "일본과 군사 동맹을 맺을 순 없더라도 강 장관이 딱 달라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우리 외교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이라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 내 중국의 패권이 강화되며 한반도를 두고 미중간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미중간 새로운 관계 설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드 보복을 통해 중국의 민낯이 드러난 이상 과거에 가졌던 한중 관계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내실 있는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사드 갈등 봉합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며 "한국은 미중 사이에 '스윙스테이트(경합주)'아 아닌 단단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대중 협력자라는 인식을 중국에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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