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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회현 "나쁜 남자 손진? 두 여자에게 차여 불쌍하죠"
입력 2017-10-27 07:02 
여회현은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완벽남` 손진 역할을 맡았다. 제공| 엘리펀엔터테인먼트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또래 배우들과 빨리 친해져서 8부작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들었어요.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만 있네요." KBS2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는 1970년대 대구를 배경으로 여고생 이정희(보나 분)의 성장과 사랑을 그렸다. 이정희는 '대구에서는 남진도 울고 갈 완벽남' 손진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 순간 사랑의 열병은 시작됐다. 수려한 외모에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손진은 배우 여회현(23)이 맡았다.
여회현은 '란제리 소녀시대'가 끝난 뒤 만난 자리에서 배우들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가장 먼저 했다. 연기 경력이 길지 않은 1990년대생 배우들이 주연을 맞은 '란제리 소녀시대'는 우려 속에서도 수채화 같은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배우들이 그린 첫사랑은 방송 내내 공감을 자아냈다.
여성 시청자들이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 손진은 역할이 컸다. 조근조근한 말투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손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머릿 속으로 그릴 법한 멋진 고등학교 선배였다.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여회현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했다. 언제 또 이런 완벽남 캐릭터를 해보겠느냐"며 웃었다.
이정희의 짝사랑 상대인 손진은 흠잡을 데 없어 보였으나 상처도 있었다. 그 또한 사춘기를 겪고 있던 학생이었다. "손진이 겉으로는 완벽한 친구지만, 풋풋한 사랑을 겪고 있는 어린 학생이었죠. 아픔이 있을 거라고 봤어요." 시놉시스에 묘사된 손진은 마냥 잘난 남학생이었지만, 여회현은 손진의 속내를 들여다보려고 했다.
"'19살 순수한 청년'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뒀어요. 저는 원래 진지하지 않고 가벼운 사람이에요. 촬영하는 동안에 제 모습이 비쳐 조심하기도 했어요. 손진이 전형화된 캐릭터 같지만, 오히려 뻔하게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배동문과 확실히 차이가 나는 인물이 돼야 했던 거죠."
서울에서 전학 온 박혜주(채서진)을 사랑했던 손진은 이정희의 애정 공세를 밀쳐냈지만, 이정희가 상처받는 건 원하지 않았다. 자신을 좋아하는 여고생의 마음을 받을 수는 없는 대신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손진이 박혜주와 이정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비쳤다.
"어장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웃음).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죠. 손진이 나쁜 남자처럼 보이지만, 자신에게 호감을 나타낸 친구에게 상처 주기 싫었던 게 아닐까요. 그래도 손진은 항상 진심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손진이 가장 불쌍하네요. 박혜주나 이정희에게 모두 차였으니까요(웃음)."
여회현은 차세대 미남 배우로 꼽히고 있다. 제공| 엘리펀엔터테인먼트

'란제리 소녀시대'는 배우들의 이름값을 내세운 드라마는 아니었다. 시작부터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첫 방송 때는 배우들의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혹평이 잇따르기도 했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전혀 문제가 없었고, 시대적인 이질감이나 사투리에 대한 문제였어요. 방송 전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방송이 나간 뒤에는 무덤덤했어요." 여회현은 빗발치는 지적에 대해 "당연히 피나는 노력을 했다. 배우들이 잠도 안 자고 악착같이 노력해 후회는 없다"고 회상했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배우와 제작진이 열정을 쏟은 덕분에 점차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회현은 "연기를 잘했다기보다는 배우들의 노력이 화면에 담겨 예쁘게 보인 듯하다"고 했다. 마지막 회 방영일까지 촬영에 나섰던 이들은 시간과 싸우면서도 드라마가 '순수한 첫사랑'이라는 본래 방향을 잃지 않도록 했다.
여회현은 이정희가 상상하는 장면을 가장 재밌는 신으로 꼽았다. 손진에게 반한 이정희가 모든 세상을 손진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순간들이었다. 물에 빠진 이정희가 자신을 구해준 배동문이 아닌 손진이 슈퍼맨처럼 날아와 구했다고 착각한 장면은 웃음을 안겼다.
"손발을 없애고 싶을 만큼 진짜 힘들었어요(웃음). 가뜩이나 오그라드는 연기를 못하는데, 과장해서 오글거림의 끝을 달려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시작이 어렵지, 오히려 제가 더 신나서 했죠. 그만큼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정말 잊지 못할 작품이죠."
지난 2014년 드라마 '피노키오'로 데뷔한 여회현은 또렷한 이목구비로 주목받았다. '란제리 소녀시대'에서도 그랬다. "저는 솔직히 잘생긴 거 같진 않아요(웃음). 옛날 스타일이기도 하고, 캐릭터 덕분인 듯해요. 좋게 봐주셔서 황송하죠." 여회현은 부끄러운 듯 미소 지었다.

손진과 배동문은 이정희를 두고 막판에 경쟁하는 구도가 됐다. 이들을 연기한 여회현 서영주는 '솔로몬의 위증'에도 함께 출연했지만, 역할의 상황에 따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기회는 없었다. 두 사람은 '란제리 소녀시대'를 통해 둘도 없는 형 동생 사이가 됐다.
"(서)영주는 너무 착한 동생이에요. 눈치도 빠르고 자기가 알아서 뭐든지 척척하죠. 서로 친구같이 생각해서 잘 맞는 듯해요. 개인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동생이기도 하죠. 영주는 현장에서 굉장히 프로예요. 연기적인 부분은 저보다 앞서 나가는 부분도 있고요. 데뷔 연차로만 따지면 영주가 대선배님이에요."
주인공 이정희를 연기한 보나(본명 김지연·22)를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보나는 완전히 반전이었어요. 주연으로 8부작을 한 건 정말 대단한 거죠. 상상 이상으로 존경해요.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도 보나는 끝까지 싫은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하더라고요. 저 같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여회현은 '란제리 소녀시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따뜻하고 포근한'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친구들과 모인 듯한 현장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길을 가다가 알아보는 팬들도 부쩍 늘었다고 했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그에게도 온기가 넘치는 드라마로 기억됐다.
"손진은 그렇게 나쁜 캐릭터가 아니예요. 나쁘게만 봐주시지 말았으면 해요(웃음). 드라마와 손진을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더 노력서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in999@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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