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씨젠, 검사 당일 결과 나오는 `원스톱 분자진단 시대` 연다
입력 2017-10-11 13:57 

"메르스 의심환자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는데, 고열 등 증세는 그대로라면 어떻게 할까요? 무슨 병인지 모르니 다른 검사를 계속 해야 합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지금 시스템으로는 결과를 받기까지 며칠이 걸리지만 이걸 검사 당일 결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천종윤 씨젠 대표는 "'세계 분자진단 시장의 판을 바꾸겠다'고 장담했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지난 1년간 최선을 다해 뛰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 회사는 최근 '씨젠 랜덤 액세스'라는 새로운 분자진단 플랫폼을 내놓았다. 환자의 검체나 검사 종류에 상관없이 장비 하나로 다양한 분자진단을 할 수 있는 시약-장비-소프트웨어(SW) 통합 시스템이다. 천 대표는 작년 매경과의 인터뷰에서 2~3년 안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나 애플 앱스토어처럼 복잡한 기술을 몰라도 쓸 수 있는 획기적인 분자진단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진단은 크게 면역진단과 분자진단으로 나뉜다. 면역진단은 혈액 한 두 방울로 짧게는 30분 안에 바이러스 감염 여부 등을 판별한다. 분자진단은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전문가가 몇 시간에 걸쳐 유전자 정보를 증폭시키고 결과를 분석해 검사한다. 천 대표는 "분자진단은 유전자 수준까지 깊이 들여다보기 때문에 정확해서 좋지만, 결과가 늦게 나오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단점이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플랫폼과 소프트웨어(SW) 개발을 마쳤고 이제 세계 시장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분자진단 검사실에는 수십 종의 기기가 구비되어 있다. 질병마다 검출할 수 있는 시약과 장비가 다르고 전문가가 까다롭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들은 검체가 어느 정도 모인 후 몰아서 검사를 한다. 의료진이 결과를 받기까지 하루에서 길게는 사흘이 걸리는 이유다. 천 대표는 "사흘이면 환자 상태는 전혀 달라진 후다. 저렴한 비용으로 당일 결과를 알 수 있다면 치료 패러다임도 바꿀 수 있다"며 "지금까지 세계 분자진단 검사실을 찾아다니며 우리 시약을 써달라고 말해왔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병원과 의사들이 하나로 다 되는 '씨젠 랜덤 액세스'를 세팅해달라고 요청하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관건은 장비 하나로 얼마나 많은 검사를 할 수 있느냐다. 씨젠은 가능한 많은 검사 시약을 공급하기 위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던 개발 과정을 모두 자동화했다. 60여 년간 업력을 쌓아온 글로벌 자동화 검사장비 업체인 '해밀턴'사와 손잡고 전용 기기도 만들었다. 내년까지 100개의 질병 및 바이러스 등을 검사할 수 있는 '프로젝트 100'을 완성한 후, 매년 수 백개씩 새로운 시약을 내놓을 계획이다.

씨젠은 이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 전세계 의료기관과 손잡고 다양한 질병 시약들을 공동개발할 예정이다. 천 대표는 "의료 현장과 분자진단 시장을 바꾸는 일이라, 우리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세계 연구자·의사들과 시약을 공동개발하는 전략을 짰다"며 "지난 8월 세계최대 체외진단학회인 미국임상화학회(AACC)에서 랜덤 액세스를 공개했는데, 두 달도 안돼 30여 개국에서 공동개발 제안이 왔다"고 설명했다. 뇌수막염, 약제내성,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진단 제품 등은 이미 연구중이고, 암 진단과 혈액 스크리닝 관련 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씨젠은 지난 1년간 IT 융합 바이오 기업으로 체질을 확 바꿨다. 이 회사는 작년 통계학,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전공자를 찾는다는 이색적인 채용공고를 냈다. 20년 넘게 연구해온 시약 기술은 자신있었지만, 이를 생소한 장비기술과 SW 개발에 융합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70여 명의 인재를 영입했고,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면서 랜덤 액세스를 개발했다. 바이오연구소인데도 시니어변호사가 업무를 총괄하며 매니지먼트를 책임진다.
천 대표는 빅데이터와 정밀의료라는 미래를 선점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분자진단 데이터베이스(DB)의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다. 수십, 수백종의 장비를 하나로 통일하면 균일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데이터가 쌓이면 몇 년내 글로벌 의료기관·검사센터에서 세계적인 논문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 판단이 맞다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진단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의료비가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조기진단으로 적절한 시기에 맞춤 치료가 가능하고, 분자진단은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작은 병원들도 쉽게 진단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1~2년 안에 세계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검증을 받아, 지금까지 없던 99%의 분자진단 시장을 열겠습니다."
■ <용어 설명>
▷ 씨젠 랜덤 액세스 : 혈액 등 환자 검체로 검사하는 분자진단 기법의 하나이다. 의사가 의뢰하는 모든 검사항목에 대해 검체와 검사 종류에 상관없이 하나의 장비로 다양한 분자진단 검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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